국내 철강산업의 침체가 심화되면서, 철강 중심 도시 포항의 지역경제가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글로벌 보호무역과 중국발 저가 공세, 정부 지원책 부족이 겹치며 포스코·현대제철 등 대형 철강사들이 줄줄이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그 여파가 지역 상권까지 번지며 도시는 빠르게 활력을 잃고 있다.▲“포항에 IMF 외환 위기가 다시 온 느낌”
23일 포항시 북구 중앙상가 거리. 한때 ‘영남권 명동’이라 불리며 사람들로 붐비던 이곳은 현재 3곳 중 1곳이 비어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최근 이 지역의 상가 공실률은 약 35%, 원도심 종합 상가 기준으로도 24%에 달했다. 이는 전국 평균을 훌쩍 웃도는 수치다.20년 넘게 북구에서 식당을 운영해 온 자영업자 김모(58)씨는 “점심시간에 웨이팅까지 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하루 손님이 절반도 안 되는 날이 많다”며 “직원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 박모(67)씨는 “IMF외환 위기때에도 큰 타격 없이 넘겼는데, 지금은 정말 포항에 IMF가 다시 온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포항의 주력산업 ‘직격탄’… 가동률·생산량 모두 급감
위기의 뿌리는 철강산업 침체에 있다. 포스코는 올해 들어 1제강공장과 1선재 공장을 잇달아 폐쇄했고, 현대제철은 포항2공장을 무기한 휴업하며 희망퇴직 접수에 들어가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포항국가산단 가동률은 1년 사이 93.1%에서 76%로 급감했으며, 철강산단의 5월 생산액은 전년 동월 대비 7.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철강업계는 글로벌 경쟁 심화로 숨통이 더욱 조이고 있다고 토로한다. 중국의 철강 제품 수입량은 2020년 734만t에서 지난해 1060만t으로 44.3% 증가, 수입액은 16조원이 넘었다. 일본은 2조6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통해 자국 철강산업 보호에 나섰다.반면 한국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기업 부담이 커졌다. 실제로 지난해 산업용 전기요금은 kWh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0.2% 인상됐다. 이에 철강업계는 “설비투자 보류는 물론,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수준”이라고 전했다.▲“철강산업특별법 같은 정부 차원 지원 시급”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 중심지인 포항이 무너지면 지역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국가 차원의 철강산업특별법 제정 등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전문가들 역시 “철강은 여전히 수출과 제조업의 근간”이라며 “경쟁국이 보호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시장논리에 맡겨선 산업 자체가 소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포항은 오랜 기간 철강으로 성장한 도시다. 지금 이 도시는 기로에 서 있다. 제철소가 멈춘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