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은 철강의 도시다. 아니, 철강이 곧 포항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제철소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이 도시는 숨 쉬고 성장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 굴뚝이 멈췄다. 포스코는 제1제강공장과 선재공장을 폐쇄했고, 현대제철도 2공장 가동을 무기한 중단했다.지역민들은 ‘쇳물’이 멈춘 그날부터 일상의 톱니바퀴도 함께 멈췄다고 말한다. 도시의 심장이 멎은 셈이다. 숫자도 위기를 말해준다. 포항국가산단의 가동률은 1년 사이 93%에서 76%로 곤두박질쳤고, 지역 내 생산액은 지난해보다 7.2% 감소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통계 뒤에 있는 사람들이다.중앙상가에 가면 그 충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상가 세 곳 중 한 곳이 비었다. “월세 내느니 접겠다”는 말이 곳곳에서 들린다.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다음 달까지만 버티자”는 생존의 목소리만 들린다.그런데도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전기요금은 오르고, 수입 철강은 늘고 있다. 중국산 철강 수입량은 3년 새 44%나 증가했고, 일본은 철강 전환을 위해 2조원이 넘는 보조금을 푼다. 한국은 여전히 산업용 전력요금 인상 통보만 내민다.이런 가운데 국회에서 이상휘 의원이 외친 5분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언급으로 보기 어렵다. 그는 “지금은 골든타임”이라며 “철강은 산업의 쌀이며, 제조업의 기초체력”이라고 강조했다. 무역 대응, 협력업체 보호, 지역 산업 다각화까지 구체적인 해법도 제시했다.포항시의 인구는 10년 새 2만8000명이나 줄었다. 생계를 잃은 젊은이들이 도시를 떠나는 속도는 지역 소멸의 경고음을 울린다. 이는 단지 한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위기다.포항이 무너진다는 것은 곧 대한민국 제조업의 기초 체력이 붕괴되는 것을 뜻한다. 산업구조 재편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기존 산업의 기초체력 관리는 소홀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첨단산업과 전통산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균형의 문제다.철강산업은 여전히 한국 산업 수출의 5대 축 중 하나다. 수십만 명의 고용이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고, 중소 협력업체 수만 곳이 얽혀 있다. 이 구조가 한 축 무너지면 줄줄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철강이 낡았다”고 말하는 것은 산업에 대한 몰이해다. 탄소중립 시대를 향한 저탄소 제철, 수소환원제철 같은 미래기술 개발도 모두 철강에서 출발한다. 철강산업이 단지 과거의 산업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는 진지하게 성찰할 때다.포항이 처음 이 위기를 맞이한 것도 아니다. 태풍 힌남노로 제철소가 침수되던 그날도, 시민들은 땀으로 도시를 지켰다. 그때처럼 정부가 곁에 있어야 한다. 위기의 도시를 혼자 두지 않는 것, 그것이 국가다.현장을 다녀보면 말보다 표정이 더 선명하다. 거리를 나선 시민들은 말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언제 다시 일거리가 생길지 모르겠다”는 눈빛이, 이 도시의 현재를 대변한다.지금 이 순간, 포항이라는 도시가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굉음이 없다고 해서 붕괴가 아닌 건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이 도시를 응시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포항은 기다릴 여유가 없다. 골든타임은 지금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세우기엔 너무 늦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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