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근원인 원자(原子)는 원자핵이 품고 있는 양전기(陽電氣)와 그 주위를 에워싼 음전기(陰電氣) 즉 전자(電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기로 된 물질 위에서 전기로 된 몸을 가지고 전기로 된 음식을 먹으며, 전기에 의한 문명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진 전기에 대한 지식이란 고작 전기가 일으키고 있는 결과적 현상만을 인지하여 그 작용을 이용하고 있을 뿐, 아직도 전기의 근원적 실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나는 비록 과학자는 되지 못했더라도 일생동안 전기(電氣)를 다루는 엔지니어로 살아오면서 가장 궁금했던 자연 현상 중에 하나가 바로 전기가 일으키는 여러 가지 작용이었기에, 전기의 주체인 그 전자(電子)의 실체를 평생토록 탐구하며 궁금해 왔으나 의문이 풀리기는커녕 근래에 양자역학(量子力學)과 전자의 존재가 다시 맞물리면서 전기에 대한 근원적 의문만 더욱 증폭시켜주게 된다.그리니까 전자가 빛을 받으면 마치 당구공처럼 튕겨져 나오는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에 의하면, 전자(電子) 역시 입자(粒子)로 된 물질로 보여 지긴 하지만 그러나 한 개의 전자를 두 개의 구멍으로 동시에 통과시키는 2중 슬롯시험 결과에서 발생된 간섭무늬를 관찰해보면 전자는 분명히 파동(波動)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바, 그간 과학계에서 오래 동안 지속되어온 전자의 입자설(粒子說) 내지 파동설(波動說)은 일단 논란이 멈추어졌고, 좀 비논리적이긴 하지만 전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전자의 이중성이 물리학계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의문은, 전자가 물질이라면 어떻게 두 가지 형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가이다. 더구나 존재하는 물질인 전자의 위치를 확정할 수 없다는 양자이론(量子理論)으로 미루어 볼 때, 내가 언젠가 쓴 글에서 밝혔듯이 '형상화의 오류'에 빠진 우리는 모든 존재를 반드시 형상화(形象化)하려는 고집스런 사고체계(思考體系) 때문에 양자역학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긴다.이는 마치 특정 종교나 특정 사상에 전도된 사람들이 제아무리 그것이 진리가 아님을 알려주어도, 자신이 믿어왔던 사고체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발에 자신의 발(足)을 우격다짐 꿰어 맞추려는 우행(愚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하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심오한 명상가로 보이는 ‘고오타마 싯다르타(釋迦牟尼佛)’는 “형상 있는 모든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파하였으니, 최근에 물질의 궁극을 연구하던 이론 물리학자들이 드디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만유무상(萬有無相)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에 이른다.즉, 물질의 궁극은 입자(粒子)가 아니며 정보(情報)일 뿐이고 의식(意識)이라는 학설인데, 이는 다시 불가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양자(量子)는 관측하면 존재하는 것이지만, 관측하지 않으면 확률로만 존재한다는 양자의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와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하게 된다.헛된 물질로, 헛된 형상을 지니고, 헛된 꿈을 쫓다가 헛되어 사라지는 것이 바로 나(我) 임을 안다면, 더 이상 나임을 고집할 이유가 없을 듯 하지만, 나는 오늘도 헛된 망상(妄想)을 벗지 못한 채, 전자(電子)의 실체를 알고자 하며 또한 나를 찾아 헤맨다. 한 개의 양자(量子)가 우주와 동일체(同一體)라면 우리 모두가 또한 동일체인즉, 양자를 알면 나를 알 것이요 나를 알면 타인을 비롯해 모든 것을 알게 되지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