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덥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하도록 덥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 보는 재간도 없으리라.’
이 글이 낯익다 싶은 이도 계실 것 같군요. 왜냐하면 위 문장은 모더니즘 소설가 이상(李箱)의 수필 ‘권태’ 중의 몇 문장이니까요. 그런데 굳이 이상의 수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요사이 날씨가 매일이 이런 상황의 연속이니 그가 묘사한 더위와 더위 때문에 움직일 의욕도 생기지 않던 여름날의 권태로움을 글보다 더 구체적으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연일 35℃를 넘나드는 데다 밤 온도조차 높아 잠을 설치기 일쑤이니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한 기분을 갖지 못합니다. 자연히 움직임이 줄어들고 매사가 귀찮게 여겨집니다. 여름잠이란 게 인간에게도 있으면 좋겠다고 어이없는 상상도 해 봅니다.
소설가 이상이 ‘덥다’고 말하던 당시의 우리나라 여름 날씨는 분명히 지금보다는 낮았을 것입니다. 대륙성 기후인 우리나라 여름 날씨가 덥긴 했지만 그럼에도 나름 낭만적인 여름 정취가 떠오를 정도로 내 어릴 적 여름 더위는 견딜만했다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고 잘 닦인 넓은 도로가 산 아래를 씽씽 달리지만 수십 년 전 안지랭이(대구 앞산의 안지랑골)는 골골마다 맑은 물이 흐르고 곳곳에 너럭바위가 널려있어 시민들이 멱 감으러 가는 골짜기였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으레 아버지는 아침 수저를 놓자마자 김치 조금, 쌀 두어 웅큼을 륙색에 넣고 나와 동생, 또 같은 집에 세들어 살던 다른 사내아이 두엇을 데리고 자주 안지랭이로 원족을 갔습니다. 몸이 약한 나는 산을 올라가는 것이 정말 싫었지만 싫단 말도 못하고 억지로 따라갔습니다.
거기 도착하면 아버지는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소나무 가지를 꺾어 젓가락을 만드는 것을 시범 보이며 각자 소나무 젓가락을 만들어 오도록 한 후 뜸이 잘 든 하얀 쌀밥에 김치만으로 점심을 차려 나무그늘에 둘러 앉아 먹는 맛은 그야말로 ‘왕후장상의 밥상’이었습니다. 
 
배부르게 점심을 먹은 후 사내아이들은 바로 옆 계곡에 골골을 타고 흐르면서 적당히 데워진 물에 목욕을 하고, 여자 아이인 나와 동생은 바위에 둘러싸여 남의 눈길이 닿지 않을 장소를 골라 손수 두 딸을 씻겨 주시곤 했습니다. 개운하게 목욕을 해서 땀도 식고 나른해진 아이들이 소나무 그늘을 하나씩 차지하고 낮잠에 빠져들면, 아버지는 좀 더 상류 쪽으로 올라가서 멱을 감으시곤 했습니다. 
 
오후가 겨워 해가 좀 덜 뜨거우면 우리는 다시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런 날 밤에는 더위가 어지간하더라도 쉬이 잠들 수 있었고 아침까지 내처 꿀잠을 잤습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내가 살던 곳이 대프리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덥다고 소문난 곳임에도 지금 거주하는 이곳의 최근 몇 해의 여름 더위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단 생각이 듭니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1912년부터 2017년까지의 기후변화로 연평균 기온은 1.4℃가 올랐고 여름은 19일 길어졌으며, 겨울은 18일 짧아졌다는군요. 그런데 실제로는 봄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여름이 꿰찬 것이라 오해가 들 정도로 봄은 감질나게 짧습니다. 
 
주거환경이나 의류의 질이 훨씬 높아진 이유도 한몫 거들겠지만 겨울도 예전만큼 춥지 않습니다. 겨우내 무논 바닥이나 동네 연못에는 앉은뱅이 썰매를 타고 팽이를 치며 놀만큼 단단한 얼음이 얼어 있었습니다. 쇠로 된 방문고리에 손이 닿으면 쩍쩍 달라붙던 그런 추위를 요즘은 보기 어렵습니다.
금세기 들면서 일어나는 이 모든 기상 변화를 지구온난화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별달리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지구 환경의 조용한 변화도 있겠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무엇을 믿고 이리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까요? 지구가 감당하기에 넘쳐나는 숫자인 호모 사피엔스의 모든 활동, 화석연료를 태우며 움직이는 수많은 내연기관, 아마존 열대우림의 화전 개간 등, 우리 인간이 기후변화의 큰 요인임을 알고 있지만 사실 이 큰 재난을 막을 확실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후온난화는 사기’라고 말했다는 걸 어떤 인터넷 매체에서 봤습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큰 나라의 지도자가 근거 없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보통의 우리들에게도 눈앞까지 온 기후위기를 외면하고 현실을 회피하도록 부추깁니다. 
 
우리의 눈썹 바로 앞까지 타들어온 현실의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아는 게 약’이라고 하더군요. 공부하고 알고 직시하려는 마음이 문제를 해결할 바탕이 됩니다. 지금 당장 최선의 방법을 찾지 못하더라도 많이 알려고 노력하는 동안 해결을 위한 방법에 가까이 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