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국공립극단 페스티벌’이 7월 3일부터 31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에서 경주시립극단의 ‘을화’를 개막작으로 여덟 작품이 펼쳐졌다.‘을화(乙火, 예술감독 강성우)’ 김동리 원작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무녀도 (1987, 연출 이수일)’, ‘뮤지컬 무녀도동리(2013, 예술감독 엄기백)’ 완결판이라 하겠다. 근대화 시기에 전통 신앙과 개신교의 대립 속에 여성의 고난과 어머니의 삶을 다루고자 했다. 이름에서도 암시하듯, 여인은 불길 속에서 파국을 맞는다.마지막 조명은 노년의 월희 그림을 비추는데 젖 먹이는 모자 그림은 다소 의아했다. 주제가 모정에 치우친 느낌이었다. 요즘 무속과 굿을 다시 보는 세태에 맞춰서 관객에게 의문을 던지면 보다 세련되지 않을까?극중 을화 (정혜영 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을화는 배우가 아닌 진짜 무당을 쓴 것 같았다. 그녀만큼 처녀에서부터, 신을 받아 무녀가 된 을화 역을 잘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을화는 앞으로도 그녀에게 잊지 못할 배역일 것이다. 다만 캐릭터가 강한 인물이니 만큼 다음에는 역에서 잘 빠져나와야 하겠다.포항시립의 ‘모르페섬의 한여름 밤의 꿈’은 세익스피어 희곡을 각색한 것으로 동-서로 갈라져 전쟁이 계속되는 가상의 모르페섬의 광부, 원 희곡, 숲의 마왕 장면이 셋이나 중첩되어 다소 산만했다.광부 캐릭터가 훌륭한데, 이들이 펼치는 섬의 종전 기념 ‘극중 극’ 처리만 해도 좋지 않을까? 전쟁터에 남편을 보내고, 부인들끼리 광부로 힘든 삶을 사는 그들. 그러나 바람대로 전쟁은 그치질 않는다.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다. 다만 우리는 평화의 꿈을 꿀 뿐이다. 장자의 꿈이 생각난다.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꿈인가?경산시립의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무대엔 홍매화가 피어 있다. 다들 청매화를 심으라는 걸, 아버지가 굳이 어머니 이름처럼 붉은 홍매를 심었다. 홍매화뿐 아니라 청매화도, 옛집도, 집 뒤편 향나무도 아주 사실적이다. 조명을 받으니 실제 같다. 그만큼 붉은 홍매화와 옛집의 이미지는 극적으로 중요했나 보다.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젊은 날은 그 집과 초록 나무들에 있다. 힘든 오늘을 살아가는 아들 동하에게 옛집에는 추억이 담겨있다. 부모님의 젊은 날이 수돗가 세숫대야에도 담겨 있는 것이다.목포시립의 ‘푸르른 날에’는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거친 오민호가 여산 승려가 되어 수행하던 중, 민호를 작은 아버지로 알고 있는 자신의 딸 운화가 결혼식을 한다는 내용이다. 승려가 차를 마시는 무대가, 창문 너머 소나무가 보이는 작은 영상으로 삽시간 관객 모두가 선방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극 중 뻐꾸기 소리는 큰 암시를 주는데 특히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 이상을 겪고, 윤정혜가 보살피던 중 운화를 잉태하던 여름날은 특히 그렇다. 뻐꾸기는 오목눈이 둥지에 알을 낳아 새가 부화하면(탁란托卵) 오목눈이가 극진히 보살피는 습성이 딸을 형 진호에게 맡기는 암시하는 듯하다.충북도립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은 죽어가는 어머니가 막대한 재산이 든 옷을 세탁소에 맡겼다는 말에 아들들이 세탁소를 쳐들어와서 아수라장이 된다는 내용의 블랙코미디이다.마지막에 이들 모두 대형 세탁기에 넣어 세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리고는 모두 흰 의상을 입고 표정도 온화하게 춤을 추는 배우들을 보며 인간의 탐욕을 버리면 마음도 평화롭다는 진리를 배운다.경남도립의 ‘빌미’는 역대급 연극이다. 펜션을 배경으로 한 무대는 개울이 있고 무대장치로 비가 내린다. 스토리도 상상을 초월해서 평화롭게 시작하던 연극은 각 인물이 서로 죽이는 파국을 맞는다.특히 배우와 의상, 구두가 다 젖는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에게 관객들은 감동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연출과 각본을 쓴 최원석 예술감독은 ‘극장에 따라 비 효과를 못쓰는 곳이 있는데, 경주 공연에는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비와 개울물은 없으면 극 완성도가 반감될 것 같다.대구시립의 ‘오거리 사진관’은 치매를 겪는 부모와 가족의 이야기이다. 가족의 눈으로 본 치매가 아닌 치매 노인의 시선으로 본 세상이다. 아버지가 생환하는 걸 다시 사진으로 두고 같은 설정으로 되풀이 되는데 이는 정상인의 시각으로 본 치매 환자이다.어머니는 그 세계에 살고 있다. 어머니가 만난 ‘연주보살’은 실제 ‘연주사진관’ 사진사인 것이다. 특이한 것은 경산시립의 ‘아버지와 나와…’에서는 간암 말기로 고통과 환각 속에 죽어가는 아버지를, ‘오거리 사진관’ 에서는 치매로 환상에 빠진 어머니를 다룬다는 것이다.우리 사회가 그만큼 ‘어떻게 죽는가?’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세익스피어는 맥베드에서 말한다. ‘Life i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_badtags upon the stage.’ ‘인생은 단지 걸어다니는 그림자, 무대 위의 서툰 배우’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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