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로를 찾던 삼성이 최근 글로벌 빅테크와 대규모 투자 협력에 잇달아 합의하는 성과를 올리며 부흥의 기회를 맞았다. 이번 계약은 상대가 인류 지적 혁명을 주도하는 테슬라, 애플이라는 점에서 이상적이다. 해당 분야가 앞으로 우리의 '쌀'이 될 인공지능(AI) 시스템 반도체 칩과 첨단 이미지 센서 칩이란 건 더 고무적이다. 게다가 시스템 반도체는 고전해온 분야로 이재용 회장이 2030년까지 팹리스(반도체 설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에 133조 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1위에 오른다는 '시스템반도체 2030' 선언 목표 달성도 가능해졌다.삼성이 이처럼 재도약 발판을 마련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근본적 배경은 세계 질서의 급격한 변화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급부상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계획 속에서 세계 질서는 외교안보를 넘어 경제산업 측면에서도 변화에 휘말렸다. '첨단기술=군사력'이란 등식을 잘 아는 미국은 AI 반도체처럼 최첨단 산업에 활용되는 기술·부품의 중국 수출을 봉쇄하고 나섰다. 자국과 동맹국 기업들이 중국에 관련 기술과 부품을 공급할 경우 제재를 불사한다. 이 같은 세계사적 지각변동이 미국 제조업 부활이란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와 맞물리며 삼성과 같은 한국 제조업체들엔 반사이익으로 돌아오게 된 형국이다. 세계 파운드리 공급량의 3분의 2가량이 대만 TSMC에 집중된 현상이 지정학적으로 위험하다는 판단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미국이 일으킨 관세 전쟁의 최종 표적도 중국으로 세계 질서 재편을 위한 제2의 플라자 합의로 해석되기도 한다. 뒤처진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추격의 전기를 맞았지만, 삼성이 해결해야 할 난제도 많다. 우선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진 빅테크 협력사들의 요구 조건과 기대치를 고도의 기술력과 생산력으로 충족해야 한다. 그러려면 충분한 보상을 통한 관련 인력 확보 및 양성, 생산·연구·개발 시설의 차질 없는 확보, 공정한 성과 위주의 조직 운영, 내외부 정치 리스크 차단 등이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선도 기업들이 이런 과제들을 잘 해결하도록 각종 제도적 지원에 나서고 불필요한 규제를 개선하는 등 힘을 실어줘야 한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