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조 원 이상의 규모로 성장한 퇴직연금 시장이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고질적인 '저수익·고수수료'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꼽히는 '기금형 퇴직연금'의 가입 문턱을 없애려는 법안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다. 20일 고용노동부와 금융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퇴직연금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계약형' 제도다. 근로자가 직접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운용을 지시하는 방식이지만, 전문 지식이 부족한 대다수 가입자에게는 사실상 '방치형 연금'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물가상승률도 못 좇아가는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들은 적립금 규모에 따라 꼬박꼬박 수수료를 떼어 가입자들의 불만을 키워왔다.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학계, 정치권이 주목하는 것이 바로 '기금형' 퇴직연금이다. 가입자들의 적립금을 한데 모아 기금을 만들고, 전문 운용기관이 체계적인 위험관리와 분산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의 5년 임기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담긴 '다층적 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과도 맥을 같이한다. 정부는 퇴직연금 도입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특히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을 확대 개편해 특수고용직이나 플랫폼 종사자 등 모든 일하는 사람을 포괄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정부는 중소기업퇴직연금 가입대상은 현재 30인 이하에서 내년 50인 이하, 2027년에는 100인 이하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가입대상을 특수고용직이나 플랫폼 종사자 등 모든 취업자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또 노사 등 이해관계자 의견수렴과 수급권을 보장한다는 전제하에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 방안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기금형 퇴직연금의 효과는 이미 국내 유일의 기금형 모델인 근로복지공단의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을 통해 입증됐다. 2022년 출범한 푸른씨앗은 시장이 불안정했던 시기에도 안정적인 성과를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국민연금 기금이 -8.28%의 손실을 기록했을 때도 2.45%의 플러스 수익률을 냈고, 2023년 6.97%, 2024년 6.52%, 올해 상반기에는 7.46%의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학계에서도 기금형 도입의 필요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최경진 경상국립대 교수는 "개인에게 운용을 맡기는 현행 계약형보다 전문가가 체계적으로 운용하는 기금형이 수익률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며 푸른씨앗을 좋은 본보기로 제시했다.이처럼 효과가 입증된 기금형 퇴직연금이지만, 현재 푸른씨앗은 30인 이하 중소기업 근로자만 가입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국회에서는 가입 대상을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며 변화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과 박민규 의원은 각각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근로자가 기금형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 직장인은 물론 자영업자까지 누구나 자신의 투자 성향에 따라 기존의 계약형과 새로운 기금형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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