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벌어진 살인사건 피의자 절반 가까이가 가족 내 갈등이나 경제적 문제 등을 이유로 가족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나타나 단순 처벌을 넘어서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24일 경찰청 '2024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살인 혐의 피의자 276명 가운데 배우자·부모·자녀·친인척 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가 131명(47.5%)에 달했다. 이 수치는 2020∼2022년에는 30% 안팎 수준에 그쳤지만, 2023년 전 배우자나 사실혼 관계를 포함하며 55.1%(290명 중 160명)로 치솟았고, 절반 가까운 비중이 계속되고 있다.최근 발생한 사건들은 가족 내부의 갈등과 경제적 파탄이 얼마나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7월 인천 송도에서는 60대 남성이 아들을 사제 총기로 살해했고, 4월 경기 용인에서는 사업 실패로 큰 빚을 진 60대 남성이 부모와 배우자, 두 딸 등 5명을 숨지게 했다.지난달 경기 김포에서는 무직이었던 30대 남성이 부모와 형을 살해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졌다. 그는 자신을 걱정하는 부모의 말에 분노해 극단적 행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가족 살인의 배경에는 치정, 생활고, 정신병력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족 문제는 가족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가정 내 불화가 누적돼도 외부 상담이나 도움을 받기보다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작년 8월 서울 성동구 주택에서 할아버지를 살해한 20대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지만, 경찰이 출동해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무마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에는 전북 전주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의 목을 졸라 살해하려 한 50대 여성이 체포되기도 했다. 그 또한 가정폭력 등으로 112에 신고한 이력은 없던 것으로 파악됐다.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가족 문제를 가족 안에서만 해결하려는 인식을 극복하지 않으면 갈등은 계속 쌓이고 폭력으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며 "외부 상담과 지원 체제를 마련하고, 가정 위기 대처 교육을 사회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