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변압기 점검 작업 중 2만2000볼트 고압 전기에 감전돼 두 팔과 한쪽 다리를 잃은 22세 청년은 절망 대신 희망을 택했다. 발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다시 세상과 연결된 순간부터, 그의 삶은 ‘포기’가 아닌 ‘극복의 기록’으로 남았다. 바로 이범식(61) 박사다.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좌우명처럼, 그는 장애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 학문과 강단, 사회 현장에서 희망을 증명해왔다. 이제 그는 강연과 연구, 그리고 국토 대장정을 통해 희망을 나누며 ‘포기하지 않는 삶’을 전하고 있다.◆ 사고 후 25년 만에 찾은 길…“공부는 재활이자 사명”22세에 당한 감전사고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두 팔과 한쪽 다리를 잃고 깊은 절망에 빠졌지만, 그는 ‘가족을 위해, 특히 어머니를 위해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다짐으로 삶을 붙들었다.“그때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았습니다. 하지만 발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죠. 작은 시작이었지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렸습니다.”사고 이후에도 삶은 쉽지 않았다. 사업 실패와 잇따른 좌절이 이어졌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신이 진정으로 가야 할 길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는 47세에 공부를 시작해 대구대학교에서 직업재활을 전공했고, 박사 과정에서는 ‘외상 후 성장(PTG)’을 연구했다.“사고 후 25년 만에 비로소 제 길을 찾은 셈입니다. 공부는 제 재활이자 사명이었습니다.”그의 연구는 단순한 학문적 성과를 넘어 자기 치유의 과정이었다. 상처를 학문으로 승화시키는 동시에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가능성을 전할수 있었다.◆ 편견의 벽 넘은 강단…희망을 가르치다그를 힘들게 했던 건 육체적 고통보다 사회적 시선이었다. “장애의 경중과 상관없이 똑같이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힘들었습니다.”그는 그 벽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넘었다. 공부와 연구는 자존감을 회복하게 했고, 사회와 다시 마주 설 용기를 주었다. 문경대학교와 영남이공대학교를 거쳐 현재는 대신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강단에서는 장애인복지론을 강의하며 '장애를 극복해 창업과 재활로 이어가는 길'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다.“불가능해 보이는 벽도 넘을 수 있다”는 그의 메시지는 학생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장애를 단순한 지식이 아닌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 그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의미는 삶을 바꾸는 힘…강연으로 희망을 심다이 박사는 학문과 강단을 넘어 사회 곳곳에 희망을 전하고 있다. 2000년부터 법무부 교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수용자들에게 용기를 심었고, 경북 지역 학교에서 장애 이해 교육도 꾸준히 이어왔다.기업과 기관에서는 ‘삶의 의미’와 ‘희망’을 주제로 강연하며, “희망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불가능 속에서도 길은 열린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추상이 아닌 그의 삶에서 얻은 결론이었다.그의 화두는 늘 같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는 희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으로 정의하며, 의미 있는 삶을 선택할 때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그는 고백한다.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가족 덕분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위해, 아내와 가정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죠.” 가족은 그의 삶을 지탱한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그는 “의미는 삶을 바꾸는 힘”이라며, 스스로 ‘왜 살아가는가’를 물을 때 희망의 길이 열린다고 조언한다.◆ 외상 후 성장, 상처를 강점으로그의 연구 주제인 ‘외상 후 성장’은 단순한 회복을 넘어서는 개념이다.“회복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성장은 외상을 발판 삼아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제 장애는 상처였지만, 지금은 제 강점이 됐습니다.”그는 마약 사범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마약을 끊고 예전 상태로 돌아가는 건 회복입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토대로 강연하며 남을 변화시키는 건 성장이지요.”현재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중도 장애인 상담과 연구를 병행하며, 학문적·실천적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데 힘쓰고 있다.◆ ‘희망길’ 국토 대장정이 박사는 스스로 만든 희망을 사회와 나누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단순한 도보가 아니라 ‘희망을 전하는 길’이었다.2024년 7월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경북 경산까지 462km를 한 달간 걸었다. 2025년 여름에는 광주에서 경주까지 410km를 15일간 걸었다. 두 차례 국토 대장정은 대구·경북 통합과 장애인 복지 증진,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길 위에서 만난 작은 친절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누군가 대신 내준 밥값, 농민이 건넨 복숭아…. 그는 “혼자가 아니구나, 희망을 나누며 걷는 길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그는 이 여정을 ‘이범식의 희망길’이라 이름 붙였다. “2024년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2025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앞으로도 2026년, 2027년, 2028년까지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누구든 삶이 힘들고 희망을 잃었을 때 이 길을 걸으며 다시 희망을 찾기를 바랍니다.”◆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희망의 아이콘으로그의 도전은 성과로 이어졌다. 2025년 대통령 표창인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했다. 전국에서 단 세 명만이 받는 권위 있는 상이다.“과거는 미래를 담는 그릇입니다. 늘 새기며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그는 2014년 DU 행복인재상, 2015년 보건복지부 장관상, 2016년 법무부 장관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받았다. 2022년에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아내와의 인연, 삶의 의미를 전하며 큰 울림을 남겼다. 저서 '양팔 없이 품은 세상'은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줬으며, 그의 이야기는 KBS 사랑의 리퀘스트, SBS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EBS 희망 풍경 등을 통해 소개되며 대중에게 ‘희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포기하지 않는 삶을 전하는 것이 사명”그는 마지막으로 평생 붙들어온 철학을 다시 꺼냈다.“장애는 불편함이지, 불행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장애를 불행으로 보지만, 저에게 장애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자 더 넓은 세상을 만날 기회였습니다.”덧붙여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환경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입니다.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단 1%의 희망만 있어도 불가능은 없습니다”고 말했다.그는 앞으로 청소년과 직장인, 사회 초년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포기하지 않는 삶’을 전할 계획이다.“포기하지 않는 삶을 전하는 것이 제 남은 사명입니다.”◐ 주요 경력• 전) 대구대학교 산업복지학과 학사/직업재활 석·박사• 전) 문경대학교 사회복지재활과 겸임교수• 전) 영남이공대학교 청소년복지상담과 겸임교수• 현) 한국장애인재활상담사협회 이사• 현) 경상북도 사회복지사협회 대의원• 현) 법무부 교정위원 / 대구구치소 인성교육 전문 강사• 현) 한국장애인IT복지협회 회장• 현) 대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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