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9일 처음 확인된 뒤 60일 넘게 이어진 구제역으로 영세 정육점들이 '삼중고'를 겪고 있다.
설을 닷새 앞둔 29일 만난 상인들은 한목소리로 '죽을 맛'이라고 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시중에 고기가 없다. 특히 돼지고기가 구하기 어렵다. 29일까지 돼지는 26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국내에서 사육되고 있는 전체 돼지의 25%를 넘는 숫자다.
이에 따라 유통 물량이 줄어 소량 판매를 해오던 업체들은 고기를 받지 못하고 있다.
15년째 동작구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최모씨(60)는 "외상으로 거래하던 사람들은 고기를 못 구하고 있다"며 "물건이 귀한데 작은 가게들에 누가 물건을 주겠냐"고 말했다.
최씨는 "그래도 우리 가게는 제주도산 돼지고기를 장기간 거래해 물건을 수급하고 있다"고 했다.
서초구 내방역 인근에서 김모씨(55·여)가 운영하는 정육점 냉장고는 텅텅 비었다. 김씨
는 "장사를 계속 하기 힘든 지경"이라며 "거래하던 육가공 업자들도 일을 못하고 있는데 어디 가서 고기를 구하겠냐"고 털어놨다.
어렵사리 물건을 구해도 고기 값이 올라 수익이 줄었다. 마진율이 떨어진 것이다. 돼지고기 가격은 두 배로 뛰었다.
최씨는 "제주도산 돼지 앞다리 부위를 어제 1만600원(1㎏) 가져왔다"며 "가격이 많이 올라 마진을 남기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식육협회 이기호 부회장은 "설에 많이 팔리는 목전지 부위 가격도 지난해 이맘때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며 "정육업계에서 27년을 일했지만 이런 가격은 처음 본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이번 사태로 소규모 유통업체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며 "영세한 정육점들 가운데는 벌써 문을 다는 곳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기를 구해 마진을 줄인 뒤 장사를 해도 축산물을 찾는 손님이 없어 또 문제다.
서초구 방배동에서 5년째 정육점을 하고 있는 이모씨(37)는 "죽을 맛"이라며 "선물용 포장 고기는 아예 한 상자도 못 팔았다"고 했다.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친형과 함께 30년간 정육점을 한 박승철씨(52)는 "정말 최악"이라며 "매출이 절반도 안 된다"고 한숨지었다.
이날 광장시장은 설 준비를 위해 나온 시민들로 붐볐지만 시장 내 정육점은 한산했다.
박씨는 장사가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로 '언론'을 꼽았다. 그는 "병 걸려 죽어가는 소, 돼지를 보고 누가 고기를 사러 오겠냐"며 "뉴스에서 광고하듯 너무 많이 다뤘다"고 아쉬워했다.
가게를 나서는 기자에게 박씨는 "구제역과 고기를 먹는 것은 아무 상관없다는 내용을 많이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