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 동남부 끝자락, 대구 분지의 가장 동쪽에 자리한 ‘용이 깃든 고장’ 용성면은 산과 물, 사람의 기운이 응축된 산촌이다. 전체 면적은 약 79.4㎢로 경산 전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넓은 편이며 이 중 75% 이상이 임야다. 1841 가구 3155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용성면은 도시 외곽의 산골이지만 경산 시내와 진량읍·하양읍은 물론 인접한 도시인 영천과 청도로 이어지는 도로망 덕분에 도시와 농촌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근교 농업지역이다.용성면은 1960년대 약 8000명 정도의 주민이 살았다. 용성 5일장이 있었고 양조장도 있었을 정도로 주민들은 자급자족하면서 평화롭게 삶을 이어갔다. 지방도 908호선이 일제강점기 때부터 있어서 당시에도 도시로 내왕하는 대 큰 불편이 없었다. 지금도 용성면에서 대구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시내버스가 있다.
용성면 인구의 90% 정도는 농업으로 살아간다. 이 중 70% 정도는 복숭아와 포도, 대추 등 과수농가여서 농가소득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경산시는 포도·복숭아·대추·자두·묘목 등을 대표 농특산물로 내세우고 있는데 이 가운데 용성면의 복숭아와 포도, 대추는 산지 지형·기후와 맞물려 탁월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용성면에서 자라는 복숭아는 일교차가 커 당도가 높고 맛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낮에는 햇볕을 충분히 받고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분지형 기후가 과실의 당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포도 역시 용성면을 빼놓고 경산 포도를 논하기 어렵다. 용성면 육동포도는 켐벨 포도의 명산지다. 사질양토 토양과 큰 일교차 덕분에 육동의 캠벨 포도는 수확 시기가 추석 전후로 다소 늦은 편이지만 대신 빛깔이 진하고 당도가 높아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용성면의 과수농업은 단순한 생산을 넘어 체험·관광과 결합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용성면의 농원들은 소비자를 농장으로 직접 초청해 팜파티를 열고 토종 씨앗 채종, 유기농 다식 만들기, 포도나무 그늘 아래 휴식하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농산물 직거래와 도농 교류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러한 시도는 용성면이 단순한 생산지에서 도시인의 힐링 공간, 체험형 농업의 거점으로 변신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용성면의 육동미나리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농업 전통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봄철 특산물이다. 용성면 일대는 산지가 둘러싸고 있고 지하수가 풍부해 예로부터 미나리 재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곳으로 알려져 왔다. 특히 육동리에서는 맑은 물과 깨끗한 토양을 바탕으로 미나리를 집단적으로 재배해 왔고 이러한 생산 기반 위에서 육동미나리라는 이름이 지역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됐다. 육동미나리는 향이 진하고 줄기가 굵으면서도 질기지 않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농가들은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최소화하고 유기질 비료를 활용해 미나리를 키우며 수확 후에도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빠른 선별과 출하에 힘쓰고 있다. 늦겨울에서 이른 봄 사이에 출하해 봄철 입맛을 깨우는 제철 나물로 각광받으며 대구·경산을 중심으로 한 인근 도시의 식당과 가정으로도 꾸준히 공급되며 최근에는 수도권 등 타 지역으로 유통 경로를 확대하는 추세다.용성면 북동부에는 해발 600m 안팎의 구룡산이 솟아 있다. 구룡산은 경산시 최동단을 이루는 산으로 산 정상 일대와 능선은 경산 용성면과 영천, 청도 경계에 걸쳐 있다. 옛날부터 용과 관련된 전설이 전승되는 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산으로 말미암아 용성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구룡산 자락에 위치한 반룡사는 신라 문무왕 원년(66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중건돼 5개의 암자와 25개의 당우가 세워진 거대사찰이었으나 1916년 화재로 완전히 소실됐다. 지금의 반룡사는 복원한 것이며 사찰 입구의 성벽처럼 길고 튼튼한 석축과 누각이 특징이다. 반룡사에는 원효와 요석공주의 설화가 전해오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설총이 자란 곳이기도 하다. 당시 무열왕 내외는 딸과 손자를 만나기 위해 지금의 반룡사 뒷산을 넘어왔는데 이 길을 왕재라고 한다. 반룡사는 신라 때는 왕과 왕실 사람들이 경주에서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 찾아왔을 만큼 흥했고 조선시대에는 25개의 전각과 5개의 암자를 거느릴 만큼 사세가 강했다.
용산산성은 해발 435m 용산의 정상 아래를 둘러싼 형태의 산성이다. 경사가 완만한 동·남쪽으로는 돌을 쌓았으며 경사가 급한 서·북쪽으로는 돌과 흙을 이용해 쌓았다. 지금 남아 있는 성의 총 둘레는 1.481㎞며 성벽의 높이는 약 1.5∼2.5m다. 동쪽의 성벽은 내외 2중 성벽의 형태를 취했으며 성안에는 잡석과 흙을 다져 뒤채움을 했고 외곽도로를 만들어 통행했다. 4대문터 주위에는 문루 등의 건물이, 동남쪽의 모서리에는 장대 혹은 망루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김인문이 당나라로부터 돌아와서 군주로 임명됐고 장산성의 축조를 감독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서의 장산성이 지금의 용산산성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 성을 만든 연대가 삼국시대임을 짐작하게 한다.
난포고택은 임진왜란 때 전주를 방어했던 난포 최공철이 지은 집이라고 전한다. 명종 원년(1545)에 지었다고 하는데 건축양식이나 기법으로 봐서는 대략 17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집으로 보인다. 가경 14년(1809)이라고 쓰여진 막새기와가 발견돼 순조 9년(1809)에 보수한 것을 알 수 있다. 원래는 정침·아랫사랑·중사랑·방아실·행랑채와 마루 그리고 사당 등이 고루 갖춰진 집이었으나 지금은 정침·행랑채·사당만 남아 있다. 난포고택은 단순한 옛집을 넘어 경산 지역의 유교 문화와 생활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오랜 세월 동안 후손들에 의해 관리되거나 지역 사회의 관심 속에서 보존돼 오며 오늘날에는 전통 건축과 선비 정신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역사 문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산숲길은 용성면 일대의 낮은 산과 숲을 따라 조성된 자연 친화형 산책 숲길로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일상 속에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생활형 힐링 공간이다. 대규모 관광지를 목표로 한 길이 아니라 기존 지형과 숲을 최대한 보존해 조성된 점이 특징이다. 이 숲길은 인공 시설을 최소화해 숲 본래의 분위기를 살린 것이 특징으로 걷는 동안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며 사색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미산숲길은 인근 마을과 사찰, 농촌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용성면의 자연과 생활 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길로 활용되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한 힐링과 산책을 원하는 이들에게 용성면 자연의 가치를 온전히 전해주는 숲길이다.
박의수 이장협의회장은 “용성면은 아직 전국적인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역사와 자연, 전통이 어우러진 보물창고”라며 “예로부터 인심 좋고 자연환경이 빼어나 외지인이 정착하기에 안성맞춤인 마을”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용성면을 찾는 귀농·귀촌 인구는 최근 10년간 약 100명 정도로 다른 면에 비해 많은 편”이라며 “젊은 인구가 많이 용성면에 정착하면 인구 소멸 문제도 극복하고 과거의 용성면 보다 많은 변화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김상태 면장은 “용성면은 경북 남부를 대표하는 도·농복합도시로 교통의 요충지이자 깨끗한 공기와 넓은 들, 조용한 산자락 등이 장점”이라며 “현재 추진 중인 경산-울산간 고속도로 건설사업이 확정되고 추진된다면 용성면은 큰 발전 요인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간 지역 특성상 의료·문화 인프라가 도심보다 부족하고 고령 농업인 비중이 높다는 점은 용성면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며 “과수 농업의 경쟁력, 선비 정신과 불교 문화가 공존하는 역사 공간, 농장 체험과 팜파티로 대표되는 새로운 농촌 관광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살기 좋은 산골, 돌아오고 싶은 고향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