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때문에 난리다. 설탕값도 올랐고, 조만간 밀가루 가격도 오르지 않겠나. 앞으로가 더 문제다.”(식품업계 관계자)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류비가 오르고, 부동산 임대료까지 치솟아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일본 대지진 영향도 우려된다. 적자폭이 더욱 커지고 있다.”(제분업계 관계자) 원자재 가격 급등과 구제역에서 촉발된 물가 상승세가 걷잡을 수 없이 전방위로 번지고 있다. 그칠줄 모르고 치솟던 외식비는 결국, 외환위기(IMF) 수준까지 상승했다. 이에 따라 가격 급등과 정부의 가격 인하 입박 사이에서 고민하던 식품업계와 산업계는 속속 결단을 내리고 있다. ◇CJ설탕값 인상…후발 업체 줄줄이 인상될 듯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지난 12일부터 설탕 출고가를 평균 9.8% 인상했다. 이에 따라 설탕을 주원료로 하는 가공식품의 가격 인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하얀설탕 1㎏의 공장도 출고가를 이날부터 1309원(부가세 포함)에서 1436원으로 9.8% 올렸다. 또 15㎏은 1만6928원에서 1만8605원으로 9.9% 인상했다. 이번 인상은 지난해 12월 평균 9.7%를 인상한지 3개월만이다. CJ제일제당은 당초 지난 해 말 제품가격을 15% 정도 올릴 방침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정부의 물가안정 방침에 따라 작년 말 인상폭을 평균 9.7%대로 낮췄다”며 “올초부터 추가 인상할 계획이었지만 최대한 연기해 이번에 어쩔 수 없이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당회사가 설탕값 인상에 나선 것은 국제 원당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원당 값은 미국 뉴욕상품거래소(NYBOT-ICE)에서 10일(현지시간) 파운드당 28.71센트를 기록, 1년 사이에 45.8% 올랐다. 2년 전과 비교하면 128% 급등했다. 이는 세계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은 가뭄으로, 한국의 원당 주 수입국인 호주는 지난해 겨울 수확 막바지 철에 홍수 피해를 입어 수확량이 줄고 운송까지 차질을 빚은 데 따른 것이다. 제당의 제조 원가 중 원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70~80%에 이른다. 이에 따라 다른 제당업체들도 조만간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 인상을 추진할 전망이다. 국내 설탕 시장은 CJ제일제당이 50%가량을 차지하고 삼양사와 대한제당이 뒤를 따르고 있다. 문제는 설탕을 주요 원료로 삼는 가공식품 가격의 연쇄 인상 가능성이다. 실제로 설탕이나 밀가루 등 원료 가격이 오르면, 이를 이유로 가공식품 업체가 가격을 올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제과업계 한 관계자는 “설탕과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 제과에도 인상을 검토해야 할 제품들이 일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분업계 역시 국제 밀 가격 폭등으로 밀가루 가격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대한제분 관계자는 “1년 전보다 국제 밀가격이 40% 가량 올랐다”면서 “지난해 연말부터 적자폭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동아원 관계자도 “조만간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제분업계는 지난해 1월 밀가루 출고가를 약 7% 인하한 뒤 가격을 유지해왔다. ◇공공요금, 산업재도 인상 도미노 하지만 물가 고공 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국제 유가 오름세라면 3월 물가 압력이 더 클 수밖에 없고 전기요금을 비롯한 인상 대기 상태인 공공요금도 부지기수다. 서울시는 10년간 동결해온 상수도 요금을 올해 하반기 이후 최고 17%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기도 여주군과 하남시는 7월에 상하수도 요금을 올리고 과천시는 9월에 인상할 계획이다. 철과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서 산업재 제품들은 줄줄이 상승 대기중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원자재 상승분을 반영해 4월과 7월 두 차례 걸쳐 열연강판(건설 등 산업계 전반에서 주로 사용하는 철)과 후판(조선산업용) 가격을 인상했다. 철광석 가격은 이후에도 40% 가량 올라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은 2분기 철강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중국과 일본 철강사들은 원재료 가격 인상분의 일부를 철강제품 가격에 전가했다. 일본 JFE스틸은 2분기 열연 내수가격을 t당 2만엔(22만원) 인상했으며, 중국의 바오스틸과 안스틸 등은 t당 800위안(약 14만원) 가량을 올렸다. 유가 급등으로 원유에서 추출되는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서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합성수지,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의 가격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중간재이기 때문에 인상 효과가 광범위하게 확산될 전망이다. 산업 접착제 가격도 최고 25% 올랐다. 접착제와 실런트 전문 기업인 헨켈은 “지난 15개월 동안 계속된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에 따라 가격을 올렸다”며 “기존 계약을 고려해, 인상 폭은 10~25% 사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 기대심리, 본격 확산 이상 한파와 구제역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면서 농수축산물 가격 상승세도 꺾이지 않고 있다. 통계청은 2월 식료품 등 생활물가가 지난해 동월 대비 5.2% 올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체감은 수치를 뛰어넘는다. 이마트에서 판매되는 국내산 삼겹살(100g)은 현재 1680원으로 950원이던 1년 전에 비해 76.8% 뛰었다. 고등어 1마리(300g) 가격도 1980원으로 1년 전(1780원)보다 11.2% 올랐다. 배추, 무 등 채소류 상승세도 여전하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1만5000원까지 치솟았던 배추가격(소매가)은 다소 안정됐지만 1포기에 4710원으로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하면 33% 올랐다. 대파(1㎏)는 4308원, 무(상품 1개)도 1529원으로 1년 전에 비해 각각 50%, 26% 뛰었다. 물가상승세가 기름값과 각종 농산물을 넘어 외식비, 미장원 요금, 목욕탕비, 학원비 등 개인서비스요금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향후 물가상승세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물가 인상 쓰나미는 외식업계에도 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식비는 전월 대비 1.4% 올랐다. 외식비가 한달 사이에 1% 넘게 상승한 것은 외환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2000원을 넘었던 1998년 1월(3.1%) 이후 13년 동안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3월(1.3%)과 지난달, 단 두차례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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