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이 격랑의 한복판에 서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 강화, 탈탄소 전환 압박, 중국발 공급 과잉까지 겹치며 ‘산업의 쌀’로 불리던 철강은 더 이상 안정 산업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코 노사가 꺼내 든 키워드는 다소 낯설다. ‘투쟁’도, ‘양보’도 아닌 ‘사회적 책임’과 ‘가치 창출’이다.포스코 노사는 지난 30일 ‘미래지향적 가치창출형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공동연구를 공식 출범시켰다. 노사관계 연구는 흔하지만, 이번 시도는 결이 다르다. 노동조합을 임금과 복지를 둘러싼 이해당사자가 아닌, 지역사회와 산업 생태계의 주체로 재정의하려는 실험에 가깝기 때문이다.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USR)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상징적이다. 그동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익숙했지만, 노조가 지역사회 기부와 산업 정책 연대, 안전 혁신에 주도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한국 노사 문화에서는 보기 드물었다. 실제 포스코 노조는 지역 약자 지원, 장학사업, 재난 구호 활동에 참여해 왔고, 안전 분야에서는 현장 중심의 ‘바텀업’ 혁신을 내세워 그룹 안전혁신 TF에까지 합류했다.이번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는 ‘노사 협력’이라는 익숙한 구호 때문만은 아니다. 노사관계의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노사 협력은 갈등을 최소화하거나 비용을 관리하는 수단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포스코 노사는 협력의 목표를 ‘산업 생존’과 ‘공동의 가치 창출’로 끌어올리고 있다.물론 이상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한국 사회에서 노사관계는 여전히 ‘제로섬 게임’의 기억이 강하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노조가 과연 조합원들의 이해와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또 회사가 이를 일회성 이미지 전략이 아닌 장기 파트너십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경영 환경이 악화될 경우, 노사의 신뢰가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럼에도 이번 시도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노사 중 어느 한쪽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장 변화와 기술 전환 앞에서 노사 갈등은 해답이 될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립보다는 공동의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이번 공동연구가 단순한 학술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노사 공동 이익활동’과 ‘지속가능한 상생 모델’이라는 구체적 결과물을 도출하겠다고 밝힌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선언이 아닌 실행, 구호가 아닌 성과를 요구받는 시대에 노사 모두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려놓은 셈이다.포스코 노사의 실험은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산업 전환기 한국 사회가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노동조합은 어디까지 사회적 주체가 될 수 있는가, 기업은 어디까지 이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이 실험의 성패는 결국 성과로 증명될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먼저 가보지 않으면 한국 노사 문화의 다음 페이지는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포스코 노사의 선택이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