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던 천안함 폭침사건이 26일로 1년을 맞는다.
46명의 고귀한 장병들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 발생 이후 남북관계는 가시밭길을 걸어 왔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11월23일 북한의 연이은 연평도 포격 도발로 남북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더 이상 나빠 질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공식 사과나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남북관계는 언제쯤 대화국면을 맞이할 것인가.
북한은 북핵 6자회담 개최와 관련해 '혈맹'인 중국을 등에 업고 무조건 대화 테이블에 앉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 관계는 아직도 시계제로 상태다.
그러나 북한이 최근 북한 지진국장 명의로 우리측 기상청장에게 전통문을 보내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와 백두산 현지답사, 학술토론회 등 협력사업을 추진시켜 나가기 위한 협의를 열자고 제의했다.
통일부도 22일 이 같은 북한의 제의에 대해 기상청장 명의의 답신을 보내, 백두산 화산 관련 전문가단 협의를 오는 29일 문산에서 갖자고 제의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같은 제안이 혹여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냉·온탕 오간 남북관계
정부는 천안함 사건 발생이후 5·24 대북조치를 발표,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간 교류를 중단시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실패한 정책'으로 낙인 찍혔고, 대북정책의 기본부터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봇물을 이뤘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우리 정부에 금강산 관광재개를 압박하며 지난 4월13일 금강산 관광지구내 정부와 한국관광공사 소유 부동산을 동결했다.
그러나 잠시 동안이지만 남북 간 화해의 조짐이 보였던 때도 있었다. 지난해 10월에는 남북이 이산가족상봉 개최에 합의하면서 경색됐던 남북관계에 모처럼 화색이 돌기도 했다. 10월30일부터 11월5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상봉행사에서 남북 가족들은 오열 속에 재회의 감격을 나눴다.
정부는 천안함 사건 이후 최초로 북한에 쌀 5000t과 시멘트 1만t을 비롯해 생필품과 의약품 등 수해지원 물자 전달을 약속했다.
그 동안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았던 모든 장애요소들도 '한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 눈 녹듯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 같은 기대를 여지없이 깼다. 또다시 이산가족 상봉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1월23일 연평도를 향해 포격 도발했다.
연평도 포격 도발 다음 날인 24일 정부 차원의 대북 수해지원을 위해 중국 단둥에 대기 중인 시멘트 3700t과 5억8000만원 상당의 의약품 지원이 중단됐고, 물자는 전량 회수조치됐다.
청와대는 연평도 포격 도발 이틀째인 25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긴급안보경제점검회의를 열었다.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 간 모든 교류를 중단한 5.24 대북조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또한 국민정서 및 남북관계 상황 등을 고려해 허용여부를 엄격히 검토하기로 했다.
천안함 사건을 비롯한 무력도발에도 허용돼 왔던 북한 영유아 및 임산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인도지원도 중단됐다. 25일로 예정됐던 남북적십자회담이 무기한 연기되자 북한은 "더 이상 인도주의 문제 해결에 연연할 생각이 없다"며 남북대화 '파탄'을 선언했다.
남북이 모든 교류 단절을 선언하고 나옴에 따라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운명도 바람 앞에 촛불이 됐다.
◇남북, 대화의 문으로 한발
강경 일변도의 대남 정책을 펴오던 북한은 올해 1월 들어 돌연 태도를 바꿔 대남 대화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월 남북이 중국에서 정상회담을 목표로 비밀접촉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여전이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변화가 있어야 된다는 조건이 충족돼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일축했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설을 강력히 부인하며, 북한과 본격적인 당국간 회담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제의한 백두산 화산 관련 남북협의도 민간급 전문가가 참석하는 '전문가단 협의' 형식으로 연다는 계획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22일 "기상청장 명의로 북한에 답신을 보내 백두산 화산 관련 전문가단 협의를 3월29일 우리측 지역인 문산에서 갖자고 제의했다"며 "전문가단 협의에는 당국자 대신 민간급 전문가가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백두산 화산 활동 연구에 대한 남북간 협력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이 회담이 남북간 당국자 회담의 시발점으로 오해될 수 있는 소지는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백두산 화산 관련 전문가단 협의에 기상청 소속 전문가 대신 순수 민간전문가들을 참석시킬 계획이다.
다만 통일부 당국자는 "전문가단 협의가 진전을 볼 경우 당국자가 참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남북 당국간 회담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회담의 격은 낮아졌지만 백두산 화산 관련 협의는 꽉 막힌 남북 대화의 물꼬를 열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북핵 6자 회담 재개와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문제가 지연되고 있는데 따른 부담감 때문에 당분간 대남공세를 자제하며 유화 제스처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북한은 지난 15일에도 갑자기 태도를 바꿔 서해상으로 남하한 북한 주민 31명 중 귀순의사를 밝히지 않은 나머지 27명의 우선 송환을 요청해 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부담이 덜한, 비정치적이며 인도적 문제인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회담에서 대북 인도지원 문제를 논의하고 발맞춰 북미 식량지원까지 해결하는 선순환을 이끌어 내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일부는 천안함 1년을 맞아 21일 배포한 자료에서 "북한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추가 도발 가능성도 철저하게 대비하며 핵심현안을 다루는 대화는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