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은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부모님의 건강 상태를 세심히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평소와 다른 말투나 기억력 저하, 사소한 행동 변화가 반복된다면 이는 단순 노화가 아닌 뇌 건강 이상 신호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치매 환자는 2020년 56만 7433명에서 2024년 70만 9620명으로 약 25% 증가했다. 2024년 치매 요양급여비용 총액도 약 2조 1757억 원에 달한다. 치매 전 단계로 불리는 경도인지장애 환자 역시 2020년 27만 7245명에서 2024년 33만 2464명으로 약 20% 늘었다.그러나 질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다. 대한치매학회의 2022년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경도인지장애’라는 용어를 알지 못했고, 73%는 이 시기가 치매 예방의 결정적 단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북구건강검진센터 허정욱 원장은 “경도인지장애는 단순 노화로 오해하기 쉽지만 치매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중요한 단계”라며 “명절처럼 가족이 함께하는 시기는 부모님의 기억력과 언어 능력, 일상 수행 능력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힌트를 줘도 기억 못 하면 ‘경도인지장애’ 의심건망증은 정보가 뇌에 저장돼 있으나 일시적으로 꺼내지 못하는 ‘인출’의 문제로, 힌트를 주면 금세 기억을 되살린다. 본인 스스로도 기억력 저하를 자각하고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반면 경도인지장애는 사건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저장’의 문제다. 힌트를 줘도 기억하지 못하고, 언어 능력이나 판단력 등 다른 인지 영역에서도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특히 식사나 세면 등 기본 일상은 유지하더라도 ▲요리 순서를 자주 헷갈리거나 ▲금전 관리에 실수가 잦아지고 ▲약 복용 시간을 반복적으로 놓치는 등 복합적 인지 기능이 필요한 활동에서 문제가 반복된다면 경도인지장애를 의심해야 한다.정상 노인의 경우 매년 1~2%가 치매로 진행되지만,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매년 10~15%가 치매로 이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치할 경우 치매 진행 위험이 약 10배 높아지는 셈이다.◆ 음식 간 변화·단어 선택 장애 등 미세 신호 주의명절 기간에는 평소 전화 통화로는 알기 어려운 미세한 변화가 드러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십 년간 해오던 음식 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익숙한 조리 순서를 헷갈리고 ▲대화 중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거, 저거” 같은 대명사 사용이 늘며 ▲30분 전 대화를 기억하지 못해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경우 등은 경도인지장애의 신호일 수 있다.또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쉽게 화를 내거나 ▲대화 흐름을 놓치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도 주의가 필요하다.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신경심리검사를 통해 기억력·주의력·언어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필요 시 뇌 MRI 검사로 구조적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 치료는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 훈련, 운동, 식습관 개선 등 생활습관 교정이 병행돼야 효과적이다. 특히 뇌 신경세포 손상이 시작될 수 있는 40대부터 조기 관리가 중요하다.중앙치매센터는 경도인지장애 예방을 위해 ‘치매 예방 3·3·3 수칙’을 권고한다. ▲3권(즐길 것): 일주일 3회 이상 걷기, 생선·채소 골고루 먹기, 읽기·쓰기 생활화 ▲3금(참을 것): 절주(한 번에 3잔 이하), 금연, 머리 부상 예방▲3행(챙길 것): 혈압·혈당·콜레스테롤 정기 점검, 매년 치매 조기검진, 가족·친구와 자주 소통하기 등이다.허정욱 원장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힌트를 줘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 지속된다면 단순 건망증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며 “경도인지장애는 조기 진단과 꾸준한 관리로 치매 진행을 늦출 수 있는 만큼 이상 징후가 보이면 반드시 전문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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