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덕’이란 말을 아시는지요? 생긴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뒤늦게 팬이나 유저가 되는 경우(입덕한다로 표현)를 일컫는 일종의 대중문화 은어로 알고 있습니다. ‘입(入)+덕(일본어 오타쿠를 우리말 소리로 변형)’의 형태로 만들어진 말인데 그 반대의 경우는 ‘탈덕’이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뜬금없이 웬 은어냐고요? 내가 바로 그 늦덕, 즉 BTS(방탄소년단)의 뒤늦은 팬이 되었거든요.   사실 그들이 처음 방송을 타기 시작할 때는 여타의 보이그룹들처럼 반짝 떠오르다가 그럭저럭 사라질 아이돌이라 여겼고 큰 관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접했던 그들의 노래에 공감이 되며 다른 것도 찾아 듣다보니 노랫말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뼈를 깎는 노력에 대한 자부심과 그에서 오는 자존감에 마음이 끌리기도 하고, 그들 음악의 강하고 맵짠 리듬을 자꾸 들으니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습니다. ‘대중문화는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무의식적 수용(문화평론가 김창남)’이라더니,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팬이 되어 있었습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놀라운 변화입니다. 나의 세대는 노래든 영화든 대체로 서구에 기대어 대중문화를 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틀즈의 노래를 듣고, 비지스의 디스코 음악에 몸을 흔들기도 하고 영화관에서 벤허와 007 시리즈를 즐겨 관람했었지요. 반면에 젊은이들은 전통 트로트 노래를 뽕짝이라는 다소 멸칭적인 이름으로 부르며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5년도에 폭발적 인기를 누린 영화 ‘K팝 데몬 헌터스’는 어떤가요?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배경이 되는 공간인 서울을 찾는 관광객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국립중앙박물관의 외국인 관람객이 엄청나게 늘다 보니 입장을 위해서 순번 대기표를 받고 길게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만 들어가는 풍경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그 전에 이미 BTS의 열풍이 세계를 휩쓸어 비교적 외국인에게는 폐쇄적이란 평을 받는 미국 그래미상에도 BTS가 노미네이트된 바 있습니다.   ‘펜의 힘은 칼보다 강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펜은 문화의 힘을, 칼은 무력을 뜻한다지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펜의 힘도 바탕에 경제적 능력을 깔고 있을 때 더 크게 힘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외국의 문화를 좇아 누리려 하던 시기는 아직 우리의 경제적 위상이 두드러지지 못한 반면 우리가 따라가던 문화의 종주국들은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던 나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위 ‘K-문화’라고 이름 지어진 한국의 영화, 대중음악, 그리고 한식까지 붐을 이루고 있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GDP)도 2024∼2025년 기준으로 세계 12∼14위권에 올라있고, 그보다 앞서 10위권에 진입한 기록도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경제적 수준에 이르니 글로벌한 영향력도 가지게 되고 따라서 K-문화의 파급 효과가 더욱 더 커질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혹 ‘무슨 말이냐, BTS로 인한 연간 경제적 가치는 중견기업 26개가 창출하는 가치와 맞먹고 콘서트 1회당 파급 효과가 최대 1조원을 넘는데 오히려 우리 경제가 BTS의 파급 효과를 받는 것이지’ 라는 반박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하긴 그들의 인기에 힘입어 관광객 유치를 비롯해서 패션, 화장품 등 산업 전반에 ‘방탄노믹스’라 불리는 막대한 낙수 효과를 불러오기도 하니 그 반박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하는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둘의 시너지가 작용하여 상승효과가 더 커지기를 기대합니다.   데뷔 때 앳된 방탄소년단이 이제는 의젓한 방탄청년단, BTS가 되어 3월 21일 광화문 광장에서 콘서트를 열고 이후 2026년 한 해 동안 세계 각국에서 글로벌 투어를 이어간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거주하는 늙은 아미가 공연 현장까지 가서 관람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지만 그래도 넷플릭스 채널로 세계에 그들의 공연을 생중계한다고 하니 거기에 기대하는 마음이 큽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그들의 파급력이 요즘 들어 성장이 주춤대는 우리 경제에 새 힘을 불어넣는 동력이 되어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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