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루할지 모르겠다. 다름 아닌 눈코 뜰 겨를 없이 바쁜 세상 아닌가. 이런 세태에 더구나 한가로이 ‘여성은 나이들 수록 언행이 성숙해야 한다 ’따위나 주장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하여 요조숙녀(窈窕淑女)까지 바라진 않는다. 다만 기본적인 인성은 갖춰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이는 아무리 빼어난 외모를 지녔다고 해도 기품 없는 언행을 행한다면 아름다움마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어찌 여성뿐이랴. 남자들도 매한가지다.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지녔어도 사람다운 품격을 갖추지 못하고 무례하다면 인품마저 격이 떨어져 보인다. 사람은 동물과 다른 게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 예의를 손꼽을까 한다. 그러나 요즘 가장 기본적인 예절조차 아예 지키지 않을뿐더러, 또한 번거로운 일로 치부하기 일쑤다. 사실 예의는 거창하거나 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관심과 신경을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행할 수 있는 일이 전부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지키는 예의는 밝은 사회를 구현 한다. 요즘 눈을 돌려보면 이러한 예절이 상실 및 실종된 느낌이다. 삼겹살 전문 식당엘 가보면 더더욱 기고만장하다. 고기를 굽는 매캐한 냄새와 더불어 담배 연기에 실려서 들려오는 남정네들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소리엔 귀를 막고 싶을 정도다. 일본을 찾았을 때 그들이 지닌 국민성에 놀랐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온 일이다. 그동안 일본을 세 번이나 여행 했다. 그곳 식당을 찾았을 때 많은 손님이 음식 씹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주위를 배려했다. 뿐만 아니라 인사성은 얼마나 바른가. 인사에 대하여 논하노라니 얼마 전 겪은 일이 문득 떠오른다.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가기 위하여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파트 지하에서부터 타고 올라온 듯한 위층 여인이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그녀를 보며 인사를 하기 위하여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 갑자기 여인이 두 눈을 감는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숙이려고 했던 고개가 빳빳해졌다. 사람을 대했을 때 그 앞에서 눈을 감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외면하는 행위 아니던가. 그런 불손한 그녀 태도가 참으로 불쾌했다. 그녀는 이웃이지만 친분도 없다. 하지만 한 아파트에 여러 해를 함께 살면서 서로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는 일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평소 이웃들에게조차 인사성이 없기로 소문 난 여인이었다. 어느 날 아파트 마당에서 마주친 이웃 아주머니가 쓰레기장을 향해 가는 여인을 가리키며, “ 저, 여자는 인사를 하면 모른 체 해요.” 라며 입을 삐죽이 내민다. 이렇듯 예의도 없는 여인이라면 어느 누구인들 호감을 가지랴. 그녀는 이웃에게 인사를 건네기커녕 오히려 자신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사람을 무시하는데 이골이 난 여인이었다. 옛말에, “인사해서 뺨 맞는 법 없다” 라는 말도 있다. 얼핏 보아 6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령의 여인이다. 이 나이에 이르면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었을 법하다. 내면이 무르익을 만 한 나이다. 그러므로 처세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깨닫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날도 내 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면 가볍게 응수하면 될 일 아니던가. 그럼에도 여인은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거만한 태도로 일관 했다. 사소한 언행을 통하여 상대방 인격을 알아볼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인사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그 사람의 배움과 인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라는 어느 글이 그래서 인상 깊다.   인사를 건네자 성가신 듯 아예 눈을 감아버린 여인, 이 행동에서 눈이 전해주는 무언의 언어를 생각해 봤다. 눈은 감정을 비추는 거울 노릇을 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멕시코 속담은, “음식과 여자는 맨 먼저 눈을 통해 들어온다.” 라고 할까. 또 있다. “여자가 말할 때 , 그녀의 눈이 무얼 말하는지 경청하라” 라는 미국 속담도 있다. 이 속담은 때론 상대방 감정을 탐지 할 수 있는 게 눈이라는 의미다. 또한 눈이 지닌 기제가 감정이 지닌 진실 여부를 드러내는데 우선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삶을 살면서 눈을 감는 일이 선(善)으로 행해질 때도 있다. 타인이 저지른 허물 및 실수, 과오 등을 대했을 때 그것을 질책하거나 들추기보다는 모른 척 할 때도 있다. 흔히 이럴 때를, “눈을 감았다”라는 표현을 한다. 한편 차라리 눈으로 보지 않는 게 보는 것보다 더 나을 때도 있다. 이런 경우는 개인적으론 그동안 신뢰했던 사람이 행하는 표리부동한 처세를 대했을 때 그러했다. 수 십 여 년 친분을 유지했던 어떤 지인이 건넨 말 한마디가 오히려 관계에 금이 가게 하였다. 지난 8월 친정 노모가 별세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러 나설 때 일이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지인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하자, “ 장례식장이 멀어서 못 가봐 어떡해? 장례 치루고 밥 한 끼 살게.” 라고 말한다. 이 말에 그녀를 향했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는 기분이었다. 이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상대방 진심을 알 수 있어서인가 보다. 사실 경사스러운 일보다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진심어린 위로가 더 필요하다. 그 여인 또한 그동안 나누었던 인간적인 정(情)과 의(義) 앞에서 눈을 감은 것이나 진배없다. 이 때 그녀는 혹시 내가 모바일 부고장이라도 자신에게 내밀까봐 걱정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녀가 건넬 몇 푼 부조금까지 바라진 않는다. 적어도 그녀가 상심에 잠긴 내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는 따뜻한 위로 말 한마디만이라도 건넸더라면 이토록 섭섭하진 않다. 그날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자 삶을 살며 이런 얍삽한 눈빛을 타인에게 내비친 적은 없었는지 절로 가슴에 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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