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본다. 그리고 마음에 자화상을 그린다. 예술가들에게 자화상(Self-Portrait)은 단순히 자신의 외양을 기록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장 깊은 내면을 향한 고백이자, 시대의 아픔을 투영하는 거울이었다. 시와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로 자화상을 그린다.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수없이 많다. 라파엘로 산치오, 뒤러, 렘브란트, 루벤스, 고갱, 고흐 등의 자화상이 있다. 1493년에 그린 뒤러의 자화상은 서양 최초의 독립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렘브란트는 100여 점이 넘는 어마어마한 수의 자화상을 그렸다. 우리나라 사람의 자화상으로는 조선시대 윤두서의 자화상이 가장 유명하며 현대 화가로는 장욱진, 하인두, 김환기, 나혜석, 천경자 등이 자화상을 그렸다. 특히 멕시코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희망의 나무여, 굳세어라’는 독특하다. 척추 수술 후 극심한 통증 속에서 완성하였다. 낮과 밤으로 나뉜 화면에 두 명의 프리다가 등장한다. 왼쪽 프리다의 등에는 수술 흉터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오른쪽 프리다는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고 의자에 앉아 척추 보정 코르셋과 ‘희망의 나무여, 굳세어라’라고 적힌 깃발을 두 손에 들고 있다. 육체적 고통과 이를 이겨내려는 의지가 담겼다. 또한 화가의 스승이자 남편 디에고의 조언과 프리다 스스로 다듬어 간 예술적 자아가 완벽하게 결합한 작품이 ‘테우아나 차림의 자화상’이다. 그림 속 프리다는 화려한 테우아나 드레스를 입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마 한가운데 제3의 눈처럼 남편 디에고의 작은 초상이 박혀 있다. 프리다 칼로의 '꿈(침대)'은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역대 여성 작가 작품 중 최고가로 낙찰되었다. 이 작품은 프리다가 덩굴이 엉킨 황금빛 담요를 덮은 채 공중에 떠 있는 침대에서 자는 모습이 담겼다. 2층 침대에는 다이너마이트를 두른 해골이 배치됐다.
자화상은 얼굴을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의 형식이며, 타인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의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려는 오래된 시도다. 서양 미술사에서 자화상은 고백의 역사였다. 그 자화상들은 한 인간의 연대기이자, 시간이 얼굴에 새기는 시(詩)에 가깝다. 화가는 거울 앞에 서서 붓을 들고, 시인은 언어의 거울 앞에 서서 한 행을 적는다. 매체는 다르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같다. 한국 시에서도 자화상은 중요한 주제다. 윤동주의 「자화상」에서 시인은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 얼굴은 또렷하지 않다. 물은 흔들리고, 얼굴은 일그러진다. 그는 그 모습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또한 서정주, 윤곤강, 김현승, 한하운, 유안진, 김초혜, 조병화, 박용래, 유안진, 김초혜, 정의홍, 천양희, 천상병, 김용택, 박두진, 노천명, 신경림, 오세영, 김종문의 자화상이 있다. 자아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가 주를 이룬다.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나르시스는 미소년으로 성장하여 많은 이들에게 구애를 받지만,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호숫가에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자신이라고 생각지 못한 나르시스는 결국 그 형상을 따라 물속에 들어가 숨을 거두고 만다. 그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봄에 피는 수선화라고 한다. 오늘날 셀피(Selfie)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자화상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카메라가 얼굴을 빠르게 복제할수록, 오히려 진짜 자화상은 더욱 어려워진다. 필터를 벗긴 얼굴, 포즈를 지운 자세, 말하지 못한 마음까지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시와 그림은 자화상의 가장 깊은 형식으로 남아 있다.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는 날마다 그 바위를 바라보며 자신도 그렇게 되고자 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되어 갔다. 링컨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고 하였다. 요즈음에는 자서전이나 영상으로 자신의 삶의 자화상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