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이나 온라인 쇼핑몰을 보면 “프로바이오틱스”라는 단어를 쉽게 만납니다. 장에 좋다, 혈당에 좋다, 면역에 좋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면 누군가는 효과를 보고, 누군가는 별 변화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같은 균을 먹었는데, 왜 결과가 이렇게 다를까요?그동안 연구를 보면 이유는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장에는 이미 수많은 세균이 살고 있습니다. 새로 들어온 프로바이오틱스가 자리를 잡으려면 기존 세균과 경쟁을 해야 합니다. 세균의 먹이인 섬유질이 충분해야 하고, 장 점막 환경도 맞아야 합니다. 2016년 Cell Host & Microbe 연구에서 비피도박테리움이 사람마다 다르게 정착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장내 미생물의 ‘기존 구성’이 가장 큰 변수라는 결론이었습니다.이번에 PLOS Biology에 발표된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연구진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장내 세균 구성을 컴퓨터 안에 그대로 옮겨놓고, 특정 프로바이오틱스를 투입했을 때 어떻게 자라고 어떤 대사산물을 만드는지 예측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 임상시험에서 관찰된 균의 정착 여부를 약 75~85% 정확도로 맞혔습니다. 특히 Akkermansia muciniphila가 잘 자랄 것으로 예측된 사람일수록 혈당 조절이 더 좋아졌습니다. 단순히 “균을 먹었다”가 아니라, “그 사람 장에서 그 균이 얼마나 자랐는가”가 핵심임을 보여줍니다.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섬유질입니다. 소량의 이눌린을 함께 먹었을 때는 단쇄지방산 증가가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양의 프리바이오틱스를 더했을 때는 부티르산과 프로피온산 생성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1,7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는 고섬유 식단으로 바꾸었을 때 부티르산이 많이 늘 것으로 예측된 사람이 실제로 인슐린 저항성 지표도 더 많이 개선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결국 “누구에게 어떤 섬유질이 맞는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이제는 남들이 좋다는 제품을 무작정 따라 먹으며 내 몸을 시험대로 쓰는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가장 잘 맞는 섬유질의 종류가 다르고 필요한 미생물의 조합도 제각각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정기적인 장내세균 검사를 통해 내 장 속 세균을 확인하고 나에게 딱 맞는 맞춤형 프로바이오틱스와 식단을 처방받는 정밀 의료가 일상이 될 것입니다.오늘 들으실 곡은 슈만의 서주와 알레그로 아파쇼나토입니다. 열정적 알레그로라는 뜻입니다. 1849년 9월, 단 며칠 만에 스케치를 마치고 곧바로 관현악 편성까지 끝냈다고 합니다. 이듬해 라이프치히에서 초연했습니다. 협주곡이라고 부르기엔 형식이 자유롭고, 그렇다고 단순한 소품이라고 하기엔 규모와 밀도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곡과 비교되는 곡은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54입니다. 피아노 협주곡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이곡은 조금 가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들어보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더 농밀하고, 더 실험적이고, 더 과감합니다. 마치 같은 작곡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색채가 다릅니다. 당시 슈만은 바이런의 시에 깊이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미 만프레드 서곡을 썼고, 곧 히브리 선율도 작업하게 됩니다. 시 속의 고독한 영웅,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음악으로 옮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곡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과 고양이 함께 흐릅니다.서주는 아주 조용히 시작합니다. 피아노가 끊임없이 아르페지오를 펼칩니다. 마치 잔잔한 물결처럼 화음을 흩뿌립니다. 오케스트라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심스럽게 숨을 고릅니다. 화성은 분명 G장조에 발을 딛고 있지만, 어딘가 불안합니다. 긴 서주가 끝날 즈음, 극적인 쉼표가 찾아옵니다. 그 정적이 공기를 팽팽하게 만듭니다. 곧이어 알레그로가 터집니다. 오케스트라가 먼저 웅장한 제스처를 던집니다. 피아노가 그것을 받아 다시 밀어붙입니다. E단조로 변하면서 2주제가 피아노의 왼손 선율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노래하듯 이어지다가 오른손으로 옮겨 갑니다. 반주는 최소한으로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선율이 더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전개부에 들어서면 슈만의 상상력이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낯선 색채가 귀를 사로잡습니다. 이어서 서주의 재료가 E장조로 변형되어 스며듭니다. 여기서는 베토벤을 떠올리게 하는 동기 전개가 이어집니다. 선율을 뒤집는 전위, 잘게 쪼개는 분절, 리듬을 압축하는 기법이 쉼 없이 이어집니다. 밀도 높은 화성과 끊임없는 추진력이 긴장을 극대화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처럼 느껴집니다. 재현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2주제가 으뜸조에서 들립니다. 하지만 처음 모습 그대로는 아닙니다. 이미 여러 번 변형을 거친 뒤라 한층 성숙해져 있습니다. 마지막은 의외로 과장되지 않습니다. 거대한 승리라기보다는, 치열한 싸움 끝에 얻은 담담한 결말에 가깝습니다. 이 곡을 두고 평론가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영감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슈만 후기 양식의 중요한 단서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습니다. 단일 악장 안에 서주, 알레그로, 전개, 재현을 모두 담아낸 구조만 보아도 충분히 독특합니다. 협주곡과 환상곡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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