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땀 냄새 나는 리허설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기는 흔치 않다. 경주시립극단이 제134회 정기공연 ‘하얀 앵두’를 앞두고 지난 19일 열린 오픈 리허설 현장은 완성된 공연 이전의 열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자리였다.지척에서 배우들의 호흡과 몸짓, 동선 등을 지켜보며 관객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취지에서 공개한 경주시립극단 오픈 리허설은 본격 공연 이전, ‘연습의 현장성’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본 무대의 제반 요소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연기는 배우들을 더욱 긴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공개된 리허설은 총 9장으로 구성된 작품 중 1장을 선보이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연습’임에도 높은 몰입감과 밀도를 보여줬다.
상임단원 외 2명의 객원 단원이 포함된 8명 배우들의 대사 하나, 눈빛 하나에도 감정의 결이 살아 있었고 날것의 에너지가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이 작품 ‘하얀 앵두’는 한국 현대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 배삼식의 대표작으로,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비극 대신 한적한 산골 마당의 일상과 자연의 순환을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즉 나무를 돌보고 씨앗을 심는 반복적 행위, 늙어가는 몸과 태어나는 생명의 병치 속에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조용히 되묻는다.연출을 맡은 강성우 감독은 “경주는 기억의 도시”라며 “극의 배경인 강원도 영월의 산골 마당과 천년의 시간을 품은 경주의 정서가 닮아 있어서 이 작품을 경주에서 꼭 선보이고 싶었다”고 밝혔다. 경주라는 도시의 시간성과 맞닿는 지점에서 이번 공연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리허설 현장에서 만난 배우들은 한결같이 배역에 몰입한 표정이었다. 이명수, 서은경, 이협수, 송정현, 권오성, 이지혜, 최선희, 박문현 등의 출연진은 각자의 인물로 분해 삶의 한 단면을 끌어안듯 연기를 펼쳤고 나머지 여백은 관객의 몫으로 다가왔다.리허설이 끝난 뒤, 강성우 감독의 진행으로 배우 소개와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객석을 채운 시민들은 연습 과정과 캐릭터 해석, 무대 구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한 관객은 “1막만 봤는데도 재밌고 편안해진다”며 “본 공연이 더욱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객은 “연습 과정까지 공개하는 극단의 시도가 공연을 더 친밀하게 느끼게 한다”고 전했다.한 배우는 “얼마나 잘하는지, 감시하는 듯한 시각은 저희를 힘들게 한다”며 “편안하게 온전히 즐기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강성우 예술감독은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쳤던 평범한 순간들이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이번 공연은 강하게 외치기보다 조용히 곁에 머무는 시간으로, 공연이 끝난 뒤에도 삶의 한 장면으로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하얀 앵두’는 시작과 끝,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그 사이에 놓인 시간과 기억을 응시하는 작품이다. 장면 사이에 삽입될 막간극은 현실과는 다른 시간의 층위를 열어 보이며 인물들은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로도 다시 관계를 맺고 삶을 이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다음 시간을 향한 조용한 다짐으로 읽힌다.
경주시립극단이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수많은 생성과 소멸, 기억과 시간이 겹겹이 쌓인 도시 경주에서 이 작품은 또 하나의 ‘기억’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서사가 아닌 일상의 풍경을 통해 삶의 본질을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무대라 할 수 있다.이번 공연은 경주예술의전당 원화홀에서 열린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오후 7시 30분, 토요일은 오후 3시에 관객을 만난다.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전할 이 작품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