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으니 마당에 풀이라도 뽑을까 하고 며칠 전 시골집에 다녀왔습니다. 동네 이웃들은 일찌감치 땅을 갈아엎고 여기저기 퇴비도 뿌려놓는 등 농사 준비를 해놓고 오늘은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여행을 간다더군요. 
 
본격적으로 농삿일을 시작하기 전 몸풀기 겸 이웃간 친목을 다지려는 것이겠지요. 경주에서는 벌써 매화가 벌써 이울고 목련, 개나리가 한꺼번에 피어 무채색이던 도시에 화려한 색채를 입히기 시작하지만 경북 북부 지방인 이곳은 아직 봄꽃들이 잠에서 덜 깼나 봅니다.
그럼에도 여기나 거기나 미세먼지로 뿌연 공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밤이 되면 별이 총총해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는 재미도 시골집에 오는 핑계가 되었는데 어젯밤 하늘은 평소와 달리 별빛도 흐립니다. 
 
미세먼지가 최근에 유독 심해진 것이 봄이면 몽골에서 바람을 타고 유입되는 황사에 더해 얼마 전 중국 랴오닝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의 분진이 유입된 영향도 크다더군요. 뿌옇게 흐린 공기 탓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탄식이 나옵니다. 거기에 더해 전쟁 소식도 봄을 맘껏 누릴 여유를 빼앗아 갑니다.
‘춘래불사춘’, 이 구절은 원래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지은 오언시(五言詩)의 한 구절입니다. 전한시대 11대 황제인 원제(元帝)는 나라의 힘이 약해지니 흉노가 침략할 것을 막으려 흉노와 화친하고자 하니 흉노측은 결속을 다진다는 구실로 한의 왕실과 혼인관계를 요구합니다. 
 
원제는 왕족인 공주를 보내는 대신 궁녀 중에서 한 명을 골라 보내려 하는데, 궁녀 왕소군이 한의 공주를 대신해 흉노족 선우(왕)에게 가서 혼인을 하고 선우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낳은 아들도 뒷날 선우의 자리에 오르니 소군은 왕의 어머니가 되지만 죽을 때까지 오랑캐 땅에 적응하지 못하고 남쪽의 고향을 그리워했다 합니다. 
 
이후 동방규는 왕소군의 그러한 연유를 ‘소군원’이라는 시로 표현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나 지금이나 전쟁 상황에서는 직접 전투를 치르는 병사들 못지않게 후방의 여성들과 어린이들도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한(漢)족이 오랑캐라고 낮잡아 부르던 흉노의 땅으로 왕소군이 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도 북방 흉노의 침략과 이를 방어해야 하는 한나라 사이의 갈등이 있었고, 이것이 전쟁으로 터질 것을 막기 위한 화친의 희생물로 왕소군을 흉노의 선우에게 보낸 것이지요.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던 때는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역사에 이름이 남아 전하는 알렉산더 대왕도, 시저도, 나폴레옹도, 제갈공명도, 이순신 장군도 그 이름의 위대함에 자연스럽게 마인드 맵핑되는 단어는 전쟁입니다. 
 
가까운 20세기에도 1차, 2차 양대 세계대전의 광풍이 세계를 휩쓸었고, 우리 역시 어느 쪽도 얻은 것 없이 모든 것을 잃기만 했던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바 있습니다. 그래서 새 밀레니엄이 시작하던 21세기 첫 태양을 맞이하며 그와 같은 비이성적 광기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사란 결국 사람이 꾸려가는 일인데다가 그 ‘사람’이 완전한 이성(理性)을 지닌 최고선(最高善)의 존재가 아니다 보니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지역적 분쟁과 살육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내전으로 고통 받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교착 상태로 대치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여 이란 수뇌부 수십 명을 죽이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은 결사항전을 외치며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주변의 걸프만 국가들에도 미사일을 쏘고 있습니다. 양측이 서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맞받아치며 한 치 양보 없는 대결 양상이 점점 증폭됨에 따라 세계 경제가 휘둘리고 있습니다.
일상 생활과 산업 전반에 쓰이는 에너지를 거의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도 TV에서 보도하는 중동전의 전황에 따라 전방위적으로 요동칩니다. 유가는 매일 최고가를 갱신하고 원료인 나프타를 구하지 못한 생산업체는 가동을 중단하니 쓰레기 봉투를 사재기하여 품귀 현상까지도 생긴다더군요. 
 
시설 원예로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민들도 원료비가 너무 올라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이 더 득이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까 자동차 연료를 넣으러 주유소에 갔더니 어떤 이가 자동차에 연료를 가득 채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커다란 기름통에도 연료를 가득 담아 자동차 트렁크에 넣는 것을 보면서 그의 조바심과 불안이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동방규의 시에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에 대를 이루는 구절이니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정도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여기는 도로를 따라 개나리가 줄지어 노랑 폭포를 드리우고 이제 막 꽃망울이 터져나오는 벚나무며 수선화, 진달래가 꽃잔치를 열고 있는데도 불안한 분위기와 위기감에 꽃잔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니 이 또한 ‘춘래불사춘’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성부 시인이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고 단언한 대로 세계가 직면한 이 아슬아슬한 위기도 해소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세계 각국의 지도자가 지혜를 모아 난관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믿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