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 이어 교수까지. 카이스트에서 들려온 잇따른 자살 사건 소식에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에선 서남표 총장 사퇴를 종용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징벌적 장학금제도, 전과목 영어 강의 등 교내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연이은 자살엔 정신과적 원인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대체 어떤 환경이 학생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11일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정신과 이병철 교수를 통해 자세히 들어봤다. ◇평생 져본 적 없는 학생, 패배가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 카이스트는 국내 최상위권 학생들이 모여 있는 교육기관이다. 이들이 대학에서 겪는 패배의 경험은 과도한 충격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개 일반적인 학생들은 학창시절 동안 승리와 패배를 골고루 경험하면서 실패를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이에 반해 중, 고등학교 시절 내내 경쟁에서 져 본 적 없는 학생들은 스스로 패배를 이겨내는 데 서툴게 성장한다. 상위권 학생들이 모인 카이스트에서 이들은 반복적 패배를 경험한다. 결국 낙오하지 않기 위해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지속적 긴장상태에 놓이게 된다. 긴 시간동안 승부에서 이기는 것을 통해 보상 받아왔던 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성적이 떨어지면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여가시간, 잠자는 시간, 쉬는 시간 등을 희생해 학업에만 몰두하는 행동을 보이게 된다. ◇경쟁 심한 환경, 우울한 분위기도 복합적으로 작용 국내 대학 교육환경 역시 이를 부채질 한다. 최근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 소개 영상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는 이병철 교수는 "파도바 대학이 자랑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자유로운 교류, 풍요로운 취미활동 등 이었다"며 "밤에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 연구실적 을 자랑하던 우리의 풍경과 사뭇 달랐다"고 꼬집었다. 우울증 역시 주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에 따르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등록금 부담만 더해진다. 주변의 낙오한 사람들이 눈에 띄고 나도 이들처럼 될 것이라는 상상에 이르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압박감, 우울한 분위기, 누군가의 자살소식이 도화선 돼 결국 자살을 결심했을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우울증 있으면 나쁜 생각 뒤따라, 무조건 결정 미뤄야 그렇다면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선 필요한 것은 스트레스 해소법 실천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 지, 쉬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을 것"이라며 "사법연수원처럼 체육대회나 취미활동에 일괄적으로 참여하고 이에 몰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업이 우수한 학생일수록 여가와 학업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며 "전인적 교육 프로그램을 하루에 1~2시간 이상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우울증 실태를 파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자살이 이 정도로 표출됐다는 것은 잠재 우울증 환자수 역시 상당수라는 것을 보여준다. 추가 자살 사태를 막기 위해 위험군에 대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비관적 생각을 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실천은 무조건 미뤄야 한다. 이병철 교수는 "우울증이 있으면 최악의 상황만 가정해 결정을 내리기 마련"이라며 "현실은 절대 이와 같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섣부르게 판단하면 반드시 후회한다"며 "우울한 마음에 판단하지 말고 선택은 최대한 미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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