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은 한국인이 세종대왕과 더불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추앙되는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은 한성부 건천동에서 음력 1545년 3월 8일에 태어났습니다만 정부는 음력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한 매년 4월 28일을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로 지정해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으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불세출의 명장임을 한국인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거니와 열악한 군세로 왜군에게 대승을 거둔 명량해전, 한산도대첩, 노량해전은 세계 해전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임진왜란을 분기점으로 조선은 전기와 후기로 나뉠 만큼 왜와 치룬 7년 동안의 전란은 조선의 경제 기반을 처절하게 파괴하고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기며 사람들의 가치관도 크게 변화시킵니다. 
 
일본도 오랜 전쟁의 영향으로 도요토미 정권이 몰락하고 에도 막부가 들어서는 계기가 되는 등 전쟁의 후유증이 없지는 않았지만 실제 파괴와 살육과 방화의 현실 공간인 전쟁터였던 조선은 국토가 초토(焦土)가 되어 삶의 근간인 경작지 3분의 2가 소멸되고, 전사한 군졸들과 왜군에 무고하게 학살당한 민간인들 외에도 질병과 기근으로 막대한 인구가 감소되고 수만 명이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라, 경상 해안에서 장군의 처절한 활약과 빛나는 전공(戰功) 덕으로 조선은 살아남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영국의 명장인 넬슨 해군제독에 비기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개인적 생각으로는 문무(文武)를 겸비하고 자신에게 엄하지만 인간적으로 성숙된 인격을 고루 갖춘이순신 장군의 면면을 넬슨 제독에 비기는 것은 장군께 죄송스러울 일 같습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꾸준히 기록한 ‘난중일기’에 드러나는 장군의 면모는 그만큼 놀라운 모습입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7년의 전쟁 기간 동안 꾸준히 기록한 일기를 묶은 책으로, 전시에 지휘관이 직접 작성한 기록물로 당시의 전시 상황과 시대상, 기후, 지형, 서민들의 삶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아 2013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또한 난중일기는 가족에 대한 걱정, 전사한 아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애끊는 슬픔 등 개인적 감정을 담백하지만 진정성 있게 표현한 문학작품으로도 평가됩니다.
특히 정유재란이 발발한 정유년의 일기는 모함으로 인한 파직, 고문, 백의종군, 어머니의 죽음, 명량해전, 막내아들 면의 전사까지 많은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일기에는 ‘충(忠)’의 대상이 임금이 아니라 백성이며 나라이기에 백의종군으로라도 왜군을 물리치는 전투에 임하는 이순신 장군의 가치관이 나타나고, 명량해전을 치른 날의 자세한 전황을 기록하고 왜군을 물리친 것을 ‘천행이었다’고 표백한 인간적인 심정, 막내아들의 전사 소식을 받고 통곡하며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게 올바른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사는’ 아픔에 ‘온 세상이 깜깜하고 해조차 빛을 잃는’ 것 같은 아버지의 절절한 아픔이 한 해에 일어난 일로 당시 장군이 얼마나 참담한 마음이었을지 짐작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598년에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 전투 중에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전사합니다.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죽음으로 아군의 기세가 꺾이고 왜에게는 반격의 동력이 될 것을 염려하여 ‘내가 죽었다는 말을 삼가라’는 명을 내립니다. 
 
어릴 때 이순신 전기를 읽다가 어린 마음에도 이순신 장군의 죽음 부분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출중한 무예 실력에도 불구하고 매일 진영에서 활쏘기를 하며 실력을 단련했다는 난중일기의 기록은 자강불식(自强不息-스스로 힘쓰고 쉼이 없다)하는 그의 강건함과 성실함을 알게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임진왜란은 종결되지만 조선과 왜, 두 나라 모두에게 얻은 것 없이 너무 많은 것을 잃게 한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비판 받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선교하던 예수회 선교사들도 이 전쟁은 ‘아무런 명분도 없이 오로지 히데요시의 정복욕에 의한’ 것이며 ‘아무도 원하지 않고 오직 히데요시의 무모함’ 때문에 저질러졌다고 본국으로 보내는 서신에 밝히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현재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중동의 정세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성 없는 말바꾸기, 억지 주장을 언론매체를 통해 보며 느끼던 데자뷔(기시감)의 근거를 비로소 찾아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