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처음 이유식을 먹을 때나 동물이 어미 젖을 뗄 때 흔히 심한 배탈을 겪곤 합니다. 으레 음식이 갑자기 바뀌어서 장이 놀랐다고 가볍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장 속 깊은 곳에서는 생존을 건 치열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장내 미생물과 장의 재생 능력 사이에 어떤 은밀한 대화가 오가는지 밝혀낸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그동안 젖을 떼는 시기에 장 건강이 나빠지는 과정은 비교적 단순하게 이해했습니다. 부드러운 젖을 먹다가 거친 고체 식단을 소화해야 하니 물리적인 자극이 가해져 장벽이 상한다는 정도였습니다. 또 장 속에 살고 있던 미생물 생태계가 뒤집어지면서 유익한 균이 줄어들고 나쁜 균이 득세해 염증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이미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주거나 유산균을 챙겨 먹이는 식으로 대처해 왔습니다.그런데 최근 학계에 보고된 연구를 보면 완전히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장이 망가지는 진짜 이유는 장벽 세포를 만들어내는 공장인 장내 줄기세포가 파업을 선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장벽은 며칠만 지나도 낡아서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줄기세포가 쉴 새 없이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채워 넣어야 합니다. 놀랍게도 줄기세포가 공장을 돌릴지 말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신호가 바로 미생물이 보내는 메시지였습니다.미생물은 섭취한 음식을 분해하면서 다양한 물질을 뿜어냅니다. 이 물질이 줄기세포에 닿으면 세포 분열을 시작하라는 스위치가 켜집니다.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유익한 미생물이 사라지면서 이 스위치가 꺼져버립니다. 공장이 멈추니 장벽은 얇아지고 영양분도 흡수하지 못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미생물 종류가 변한다고만 알았다면, 이제는 미생물이 뿜어내는 대사산물이 줄기세포의 유전자를 어떻게 켰다 끄는지 그 정교한 스위치 조작법까지 찾아낸 것입니다.더 놀라운 사실은 예방의 타이밍에 있습니다. 장이 이미 다 망가진 뒤에 유산균을 주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해결책이 존재했습니다. 어미 배 속에 있을 때나 태어난 직후 아주 어릴 때 유익한 미생물 환경을 만들어주면, 줄기세포 자체가 튼튼한 체질로 프로그래밍되어 나중에 웬만한 스트레스가 와도 공장이 쉽게 멈추지 않았습니다. 평생을 좌우할 튼튼한 장벽을 짓는 기초 공사가 생애 초기 미생물과의 만남으로 결정된다는 뜻입니다.현미경으로 오랫동안 세포를 들여다보면 생명의 작동 원리가 참으로 오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닳아 없어진 내 몸을 다시 채워 넣는 재생의 힘이, 내 세포가 아닌 외부에서 온 작은 미생물의 속삭임에서 시작된다니 참 신비롭습니다. 억지로 재생을 돕는 특별한 약을 찾기보다, 좋은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를 다스려 내 안의 꼬마 일꾼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의학적 처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오늘 들으실 곡은 슈만의 연가곡 ‘리더크라이스’, op. 24입니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집 ‘노래의 책’에 담긴 시들에 곡을 붙인 작품입니다. 슈만이 가곡을 폭발적으로 써내던 1840년, 바로 그 ‘가곡의 해’에 태어난 음악입니다.    슈만은 원래부터 문학을 무척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책방을 운영하던 집안에서 자라 자연스럽게 시와 글에 익숙해졌고, 음악과 문학 사이에서 늘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두 가지 재능이 하나로 합쳐지기를 바랐다는 고백도 남아 있습니다. 결국 그 바람은 가곡이라는 형식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실현됩니다. 이 연가곡은 겉으로 들으면 비교적 단순하고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선율은 자연스럽고, 피아노 반주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그 안에 숨겨진 감정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밝게 들리는 음악 아래에, 사랑에 상처 입은 마음이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첫 곡은 아침에 일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리듬은 가볍고 경쾌하지만, 내용은 밤새 잠들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낮에는 멍하니 돌아다니고, 밤에는 괴로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음악과 내용 사이에 살짝 어긋남이 있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묘한 여운이 생깁니다.    또 다른 곡에서는 더 극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관을 짜고 있는 목수를 이야기합니다. 내용만 보면 꽤 음산한데, 음악은 오히려 귀엽고 단정하게 들립니다. 이 역시 일부러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눌러 담는 방식입니다. 마지막에 짧게 멈칫하는 순간이 나오는데, 그 짧은 침묵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남깁니다.    이런 표현 방식은 슈만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겉으로는 단순하고 아름답게 들리지만, 그 아래에는 훨씬 복잡한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음악 용어로 말하면, 표면적인 선율과 그 아래의 ‘심리적인 층위’가 따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들을수록 점점 더 많은 것이 들립니다. ‘고통의 요람’ 같은 곡에서는 한층 더 깊은 감정이 드러납니다. 선율은 부드럽고 정돈되어 있는데, 그 안에 씁쓸함이 배어 있습니다. 격하게 표현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또 ‘나무 아래에서’나 ‘머틀과 장미로’ 같은 곡에서는 비교적 따뜻한 색채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의 가곡집 안에서 다양한 감정이 짧고 응축된 형태로 펼쳐집니다.    이 작품을 쓸 당시, 슈만은 클라라 슈만과의 사랑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마음고생이 깊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가곡집에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정서가 유난히 진하게 스며 있습니다.    오늘은 이 곡들 가운데 한두 곡이라도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길지 않은 곡들이라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마음 한쪽이 조용히 건드려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음악이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깊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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