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동안 발굴 현장과 박물관 수장고를 오가며 유물을 기록해 온 사진가 이순희는 어느 순간, 렌즈 너머에 있던 유물들의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좀 더 자신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고 말하는 듯한 존재들. 오랜 세월 외면해 왔던 그 강렬한 끌림은 결국 사진 작업으로 이어졌고 오랜 시간을 견딘 유물은 그의 사진 속에서 비로소 또 하나의 생명과 존재로 되살아났다.경주에서 태어나고 활동하는 사진가 이순희의 개인전 'The Sound of Silence'가 오는 8월 16일까지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백상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경북문화재단이 주최하고 경상북도가 후원하며,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박물관이 협력한다.전시에서는 사진가가 2003년 처음 발굴 유물과 마주한 이후 20여 년간 축적해 온 시선과 사유를 집약한 작업을 선보인다. 개발 과정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토기와 유물들은 대부분 깨지고 흩어진 채 원형을 잃었지만 작가는 그 파편 속에 응축된 시간성과 생명력을 발견했다.그에게 유물은 오랜 시간 동안 땅속에서 시간을 견딘 존재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생명체에 다름없다. 작가는 토기의 원형을 상상하고 빛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와 파편이 만들어내는 잔상까지 화면 안으로 끌어들여 '보이지 않는 존재'를 시각화했다.사진 속 토기의 긴 그림자는 삶의 무게를 견디는 인간을 떠올리게 하고 깨진 조각들은 오히려 사람의 얼굴처럼 다가온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과 존재의 흔적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새로운 시간성과 상징으로 재해석한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감상 포인트다.
전시에선 왕릉의 부장품도, 국보나 보물도 아닌 이름 없이 수장고에 머물던 평범한 토기들에 시선을 돌린다. 석재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관장은 "이순희 작가는 깨진 토기의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강렬한 존재감을 발견해냈다"며 "누군가의 시선을 기다리던 유물들의 침묵을 사진으로 길어 올린 작업은 관람객들에게 시간과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깊은 울림을 전한다"고 말했다.이순희 작가는 유물 촬영을 계기로 역사와 민속학에 대한 관심을 넓혀왔다. 발굴 현장과 문화유산을 기록하며 축적한 경험은 그의 대표 연작인 '정령의 숲', '생명의 나무', '경주, 천년의 그들' 등으로 이어졌으며 이번 'The Sound of Silence'에서는 유물에 대한 사유를 본격적으로 펼쳐 보인다.
현재 시림아카이브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박사과정과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그동안 국가유산청 금석문 촬영을 비롯해 국가유산진흥원, 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박물관, 한국문화유산연구소 등의 유물 촬영을 맡아왔으며 울산 반구대·천전리 암각화와 미얀마 바간 벽화 보존기록 등 국내외 문화유산 기록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또 서울과 대구, 경주를 비롯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개최했으며 사진집 '정령의 숲'과 '경주산책' 등을 출간하며 경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사진예술로 꾸준히 기록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