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그놈의 일 때문에 책을 읽을 수가 없잖아!”책벌레였던 한 문예평론가가 직장생활 1년 차에 내뱉은 비명에 가까운 깨달음이다. 책을 더 많이 사서 읽기 위해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IT 기업에 취업했던 일본의 문예평론가 미야케 가호는 정작 회사에 들어간 뒤 책을 읽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출퇴근 전철에서도, 잠들기 전 침대에서도 시간은 있었지만 손가락은 스마트폰 SNS를 향했고, 책을 펼치면 첫 줄에서 눈이 감겼다. 결국 그는 3년 반 동안 직장생활을 버틴 끝에 ‘책을 읽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그의 경험을 담은 책 '책 읽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습니다'는 단순히 한 독서가의 특별한 퇴사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일하느라 책을 읽지 못한다’는 익숙한 푸념을 출발점으로 삼아 과연 노동과 독서는 함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책을 읽을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회는 과연 정상적인지를 묻는다.저자는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를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시간 관리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배경에 자리한 장시간 노동과 일 중심의 사회 구조에 주목한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현실은 결국 가족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기력조차 없으며 오랫동안 이어온 취미마저 포기해야 하는 삶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일본 근대 150년의 노동사와 독서사를 함께 들여다본다. 메이지시대 자기계발서의 탄생에서부터 다이쇼시대 ‘교양’을 둘러싼 샐러리맨과 노동자 계급의 분화, 전쟁 전후 직장인들의 독서 문화, 1950~1960년대 비즈니스맨의 베스트셀러, 1970년대 샐러리맨과 시바 료타로의 문고본, 1980년대 여성들의 문화센터와 밀리언셀러 등을 차례로 살핀다.    이어 1990년대 ‘행동과 경제’의 시대로의 전환과 2000년대 일이 정체성이 된 사회, 2010년대 독서가 삶의 ‘노이즈’처럼 취급되는 현실까지 추적한다.특히 저자는 일본 사회에서 노동과 독서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오늘날 책을 읽을 수 없는 현실이 단순히 개인의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짚어낸다. 일에 몸과 영혼을 온전히 바치는 것을 성실함과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결국 사람들의 삶에서 독서와 취미, 가족과의 시간 등 ‘일 이외의 것’을 밀어내고 있다는 진단이다.이 같은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6년 3월 발표한 ‘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38.5%로 조사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성인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셈이다. 여전히 OECD 평균보다 긴 한국의 노동시간 역시 ‘일이 많아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현실을 개인의 변명으로만 치부하기 어렵게 만든다.그래서 이 책의 질문은 일본을 넘어 한국의 직장인들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책을 읽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는 말 뒤에는 어쩌면 ‘내 삶에서 일 이외의 것을 누릴 여유가 없다’는 더 큰 탄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저자는 ‘책도 읽을 수 없는 사회’는 결국 ‘가족과 느긋하게 보낼 시간이 없는 사회’,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들을 기력도 없는 사회’, ‘학창 시절부터 이어온 취미를 포기해야 하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독서를 하나의 문화적 취향이 아닌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바라보는 이유다.이 책은 결국 독서에 관한 책인 동시에 노동과 삶의 균형에 관한 책이다. ‘일하느라 책을 못 읽는다’는 익숙한 말에서부터 책 한 권을 펼칠 여유조차 잃어버린 오늘의 직장인들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동아시아.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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