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남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공간이자 지역 지식인 사회의 구심점이었던 ‘사마소’의 역사와 의미를 집대성한 책이 나왔다.
 
조철제 전 경주문화원장이 펴낸 ‘경주사마소 역사(慶州司馬所 歷史)’로, 조선시대 과거에 합격한 이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교류하며 지역의 풍속과 문화를 이끌었던 경주사마소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은 기록의 빈틈 속에 묻혀 있던 경주 선비들의 삶과 사마소의 역사적 위상을 되짚어 오늘의 경주에 새로운 문화유산의 가치를 제시한다. 
 
지난 24일 저자를 만나 이번 책 발간의 의의와 주요 내용을 짚어 보았다.
이 책 ‘경주사마소 역사’는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들의 명단과 삶, 사마소의 운영과 전승, 선비들의 교류와 한시까지 흩어진 기록을 한데 모았다. 단순한 건축물의 연혁을 넘어 500년 조선의 시간 속 경주 선비들의 삶과 지역사회의 모습을 복원한 기록에 다름없다.대다수 시민과 관광객에게 ‘경주사마소’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경주 교촌 부근에 건물이 남아 있지만 그곳에서 누가 무엇을 했으며 어떤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사마소는 조선시대 과거에 합격한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친목을 도모하며 지역의 향풍과 교화를 논하던 공간이었다. ‘사마(司馬)’는 생원과 진사를 통칭하는 말로, 사마소는 당시 경주를 대표하던 지식인들이 모인 일종의 지역 엘리트 네트워크였다.
 
사마소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제도는 연산군때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전국의 많은 사마소가 사라졌고 현재까지 건축물이 남아 있는 곳은 충북 옥천과 괴산, 경북 경주와 함창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특히 경주사마소는 선대의 지속적인 보존 노력에 힘입어 경상북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역사적 가치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책은 이러한 경주사마소의 존재를 지역사회에 널리 알리고 선대가 지켜온 역사와 정신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경주사마소보존회가 편찬 사업을 추진하면서 발간하게 됐다.
  정연곤 경주사마소보존회 회장은 "사마소 건물 자체는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돼 있지만 관련 문헌과 자료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컸던 차제에, 경상북도와 경주시의 지원을 받아 집필과 편찬을 조철제 전 경주문화원장에게 맡겼다"고 말했다.
  책은 크게 총론과 국역(國譯) 부분으로 구성됐다. 총론에서는 경주사마소의 유래와 역사적 성격을 비롯해 경주의 과거 급제자와 사마소의 운영 및 전승, 과거에 얽힌 애환 등을 살핀다. 또 병촉헌과 영광대의 기문과 현판을 비롯해 경주의 대과와 소과 명안을 조명하며 당시 지역사회에서 사마소가 차지했던 위상을 들여다본다.
  국역 부분에서는 사마소 상량문과 기문, 병촉헌·영광대·정풍루 기문과 시를 비롯해 사마소 제영시, 경주연계안(경주 출신 소과·문과 급제자 명단을 일람표로 정리)을 실었다.
 
특히 책의 핵심은 사마소라는 한 공간을 조선시대 경주 전체의 역사와 연결해 살펴본 데 있다. 조선 건국 이후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되기까지 약 502년 동안 경주에서 배출된 과거 급제자들의 삶을 추적하고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조명했다. 
 
대과 급제자 74명을 비롯해 소과와 대과에서 배출된 인재들의 기록을 살피면서 합격자의 이름과 관직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 급제가 개인과 가문, 지역사회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짚었다.
 
과거 급제는 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 가문의 명예이자 지역사회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모든 선비가 영광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평생 과거에 도전하면서 번번이 낙방한 이들도 많았고 과거제도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사실상 유일한 출세의 진입로였던 만큼 치열한 경쟁과 좌절, 때로는 부정과 갈등도 뒤따랐다.
  책은 이러한 과거제도의 이면과 함께 양동마을 여강 이씨와 경주 최부자 집안 등 지역 명문가의 학문과 경제력, 사회적 책임까지 함께 살핀다.
 
사마소의 역사 역시 단순한 선비들의 친목 공간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사마소는 과거에 합격한 소수의 생원·진사들이 모이는 제한적인 공간이었지만 이들은 뛰어난 문장력과 학문적 권위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각종 향촌의 논의에 참여하고 향풍에 영향을 미치며 경주의 지식과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사마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선비들의 네트워크는 후학들에게 학문적 자극을 주고 지역의 학문 전통을 이어가는 기반이 됐다.
 
책은 사마소의 역사적 성격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조선시대 경주 사림의 변화와 향촌사회의 질서까지 파고든다. 임진왜란으로 경주사마소가 소실된 뒤 18세기 초 다시 중건된 과정은 단순한 건물의 복원이 아니라 당시 변화하는 향촌 질서 속에서 기존 사족들이 새로운 구심점을 찾고 결속을 강화했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향교와 서원의 기능 변화, 향리와 자제들의 연계, 향안 입록을 둘러싼 갈등 등 당시 경주 사회의 복잡한 구조 속에서 사마소의 존재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한시를 통해 역사 속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복원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사마소와 관련된 인물들의 문집과 각종 문헌을 샅샅이 찾아 약 170여 수의 한시를 발굴하고 번역·정리했다.
  과거에 합격한 기쁨과 벼슬길에 대한 기대, 정치 현실에 대한 탄식, 뜻을 이루지 못한 선비들의 답답함과 자연을 바라보는 마음 등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를 통해 책은 과거 급제자의 이력이나 역사적 사실과 함께 조선시대 경주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감정과 고민까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저자는 “자료를 모으고 복원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경주사마소 관련 문헌 자체가 매우 부족한데다 임진왜란 이전 기록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었다. 일제강점기나 이후 중수·이건 과정에서 자료가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정확한 경위는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전하는 문집과 기문, 시문을 비롯해 제가 소장한 자료와 문중에 흩어진 기록을 찾아 서로 대조하며 사마소의 설립과 중창 배경, 과거 급제자들의 명단과 활동상을 재구성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과거 급제자 명단은 기존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조선왕조실록’과 과거시험 방목(과거 시험에서 합격한 급제자(생원·진사 등)의 명단과 신상 정보를 정리한 문서) 등 여러 기록을 일일이 확인했다고 한다. 
 
기존 명단에는 이름이 빠져 있더라도 다른 기록에서 ‘경주 진사’ 등으로 확인되는 인물이라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저자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누락된 인물을 최대한 찾아내고 기록의 빈틈을 메우려 노력했다.
 
그러나 자료의 한계는 여전히 남는다. 임진왜란 이전 인물 가운데는 과거에 합격했다는 사실만 남아 있을 뿐 구체적인 관직과 생애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후손이나 문중에 관련 자료가 전하지 않는 인물도 많다. 사마소가 어떤 경제적 기반으로 운영됐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경주사마소 역사’는 사라져가는 지역사의 기록을 한데 모아 후대에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마소를 단순히 ‘옛 건물’로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그 공간에 모였던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이야기, 학문과 교류, 과거를 향한 열망과 좌절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 조철제 선생은 “궁극적으로는 이 책 발간을 계기로 비어 있는 사마소 건물에 ‘역사와 이야기’를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마소를 경주향교와 최부자 가옥, 교촌마을 등 인근 문화자원과 연계하고 당시 과거 급제자를 축하했던 연희와 선비들의 교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면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킬 가능성도 충분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주사마소 역사’는 조선 500년 간 경주의 선비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과거에 도전했으며, 합격과 좌절을 경험하고 서로 교류하면서 지역의 학문과 문화를 만들어갔는지를 복원한 ‘경주 지식인 사회의 역사’에 가까워 보인다.
  흩어진 문헌을 찾아내고 희미해진 인물들의 이름을 되살린 이 책이 사마소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시키고 경주의 또 다른 역사문화자원을 발굴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