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들이 실제로 어떤 말을 했고, 그 말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사라진 ‘신라말(향음, 鄕音)’을 찾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정인문학회가 신라문화의 새로운 연구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23일 문정헌에서 마련한 제12차 포럼에서 국어학자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는 ‘신라말(향음) 찾기를 위한 국어학적 방법론’을 주제로 발제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상규 교수는 이번 포럼에서 신라의 이두와 향찰, 구결을 둘러싼 기존 연구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향가와 목간, 금석문 등에 나타난 언어자료를 바탕으로 신라말을 복원할 수 있는 국어학적 접근법을 제시했다.이번 포럼은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유적과 문자자료에만 한정하지 않고,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언어 자체를 복원해 신라문화의 실체에 접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됐다.이 교수는 특히 신라에서 발전한 이두와 향찰을 단순히 중국 한자를 빌려 쓴 ‘차용문자’나 ‘차자문자’로 규정하는 기존 설명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그에 따르면 신라인들은 중국 한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한자의 음과 뜻을 변형하고 우리말 어순에 맞게 배열하면서 조사와 어미까지 표현하는 독자적인 문자 체계를 발전시켰다. 이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말을 보다 완전하게 표기한 것이 향찰이며, 한문을 우리말 방식으로 끊어 읽기 위해 구결이라는 표기법도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다.이 교수는 “한문과 한자는 외부에서 받아들인 것이지만, 그것을 우리말에 맞게 변형해 이두와 향찰, 구결이라는 독창적인 표기체계로 발전시킨 것은 신라인의 창의적인 문자문화”라고 강조했다.특히 이두와 향찰을 중심으로 한 신라의 독자적인 문자문화가 훗날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와도 연결되는 중요한 문화적 토대였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그는 현재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자 인접전파설’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구려를 거쳐 백제로, 다시 신라로 한자와 한문이 전파됐으며 신라가 가장 늦게 이를 받아들였다는 기존의 설명만으로는 신라에서 유독 향찰과 이두가 독자적으로 발달한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오히려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보다 독자적인 글쓰기 전통을 일찍부터 발전시켰기 때문에 한문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말을 기록하기 위한 향찰과 이두가 더욱 정교하게 발전했을 가능성에 대해 논의돼야 한다고 제안했다.이 교수는 향가를 실제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언어에 가깝게 해독하려는 노력도 강조했다.현재 전하는 약 25수의 향가는 고대 우리말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특히 ‘제망매가’와 ‘찬기파랑가’ 등은 당시 신라인의 언어와 사고,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고대 시가라는 점에서 단순한 문학작품을 넘어 신라어 복원의 핵심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찬기파랑가’의 일부 어휘를 비롯해 ‘모죽지랑가’에 등장하는 인명과 지명 등을 신라의 실제 향음에 가깝게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특히 당시 신라가 북방의 말갈·숙신계 세력과 접경하고 있었던 역사적 환경까지 고려한다면 향가 속에 주변 언어의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접근은 향가를 단순히 한자의 음과 훈을 조합해 해독하는 데서 벗어나 신라의 언어환경과 주변 언어, 당시의 사회·역사적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특히 향가를 짓고 말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의 언어를 통해 신라의 내면을 복원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번 발제의 의미가 크다.이 교수는 발제를 마무리하며 역사 연구에서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료가 불완전하고 역사 해석이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남아 있는 자료를 끊임없이 새롭게 읽고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는 신라 연구가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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