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적시고 햇볕에 말리는 일을 거듭한 끝에 비로소 부드러워지는 '광목'은 고단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가족의 생애이자 시인 자신의 삶이었을까. 
 
대구에서 활동하는 박영미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청도장 광목 한 필(문예미학사)'을 펴냈다. 
 
문예미학사의 ‘문화분권시선 22’로 출간된 이번 시집은 1951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시인이 자신의 삶을 이뤄온 고향과 가족, 신앙, 질병과 고통의 시간을 담담하고 맑은 언어로 되짚은 시편들을 담았다.'시월이다/ 서늘한 바람 불어와/ 내려젖던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로 시작하는 표제작 '청도장 광목 한 필'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시인의 기억과 정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시인의 고향인 청도와 어린 시절 외할머니, 어머니와 막내 이모의 삶이 한 필의 광목에 포개진다. 시 속 외할머니는 청도장에서 광목 한 필을 끊어다가 시냇물에 헹구고 햇볕에 널어 말린다. 그렇게 누렇고 빳빳하던 광목은 물과 햇살과 바람을 여러 번 통과하며 부드럽고 하얀 천이 다.
'아버지'에서는 6·25전쟁이 한 가족에게 남긴 상처를 되짚는다. 시인은 자신이 태어나던 1951년, 아버지가 국군 제2사단 소속으로 전투 중이었으며 자신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사연을 시로 옮긴다. 개인의 가족사가 한국전쟁이라는 현대사의 비극과 맞닿는다.
시인의 깊은 기독교 신앙 역시 시집의 중요한 바탕이다. 박 시인은 대구에서 경북 의성군 탑리의 시골교회까지 찾아가 주일예배를 드리고 농장에서 복숭아와 자두 등 과일 농사를 지으며 기도하고 시를 써왔다. 그의 시에서 신앙은 관념적인 종교 언어에 머물지 않고 농사와 가족, 이웃과 질병 등 일상의 구체적인 장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암 투병을 거친 시인의 경험은 이번 시집에 삶과 죽음에 대한 보다 절실한 성찰을 불러들인다. 병과 고통 앞에서 절망하고 흔들리는 자신을 숨기기보다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 순간 다시 신앙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시인 김용락은 해설 '고통과 기도, 그리고 시의 힘'에서 박영미의 시세계를 고향과 친족, 신앙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읽는다. 특히 고통스러운 순간 자신을 절대자에게 던짐으로써 절망을 건너려는 태도와 함께, 종교적 대상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데 머물지 않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는 점을 주목한다. 고향과 가족을 향한 기억 역시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지탱해온 뿌리로 작용한다.박영미 시인은 경북여고와 경북대 사범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07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징검다리', '낙타는 달리지 않는다' 등을 펴냈다. 대구 청구중학교 교사와 '매일신문' 기자를 지냈다. 
 
이번 시집 '청도장 광목 한 필'은 오래된 광목처럼 전쟁과 가난, 가족의 이별과 질병을 지나온 한 시인이 끝내 간직한 사랑과 신앙의 온기를 펼쳐 보이며 성찰에 디가감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