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한 순간은 정말 사라질까.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속도가 어느 때보다 빨라진 시대. 한 사람과 한 장소,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순간은 어디에 남는 것일까. 
 
일본 작가 이다 유키마사(Yukimasa Ida)는 그 답을 ‘기억’에서 찾는다. 사진처럼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시간과 감정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기억을 회화의 물질성과 붓질로 붙잡는 다. 
 
특히 이번 경주에서의 전시에는 작가가 직접 경험한 경주의 장소와 시간이 그의 기억과 만나 새로운 이미지로 변주된 작품도 선보여 경주가 한 젊은 작가의 감각 속에서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지도 보여준다.
경주 오아르미술관은 오는 23일부터 2027년 3월 14일까지 일본 현대미술가 이다 유키마사의 국내 첫 개인전 'Remembering You: 기억의 행위'를 연다.이번 전시는 회화와 조각, 영상 등 50점 안팎의 작품을 통해 이다의 작업세계를 폭넓게 조망한다. 
 
작가의 삶 속 인물에서 출발한 초상부터 피카소와 벨라스케스 등 미술사의 거장들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 하루의 감각을 한 점의 그림으로 기록하는 대표 연작 '오늘의 끝', 그리고 작품을 불태우는 영상에 이르기까지 ‘기억’이라는 하나의 주제가 다양한 매체와 형식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이다는 1990년 일본 돗토리현에서 태어나 2019년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유화과를 졸업했다. 2016년 CAF Award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고 2018년에는 Forbes JAPAN ‘30 UNDER 30 JAPAN’에 선정됐다. 또 2017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파운데이션 자선 경매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했으며 2021년에는 디올과 협업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일본어 표현 ‘이치고 이치에(一期一会)’, 즉 다시 오지 않을 단 한 번의 만남과 순간에 대한 사유다. 두껍게 쌓아 올린 물감과 거칠고 역동적인 붓질은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한순간의 감각과 그때 남은 감정, 존재의 흔적을 화면 위에 겹겹이 쌓아 올린다.전시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그리다’, ‘모든 것은 순간마다 달라진다’, ‘미술사의 기억’, ‘회화는 또 하나의 일기’, ‘현실은 오직 기억에 의해서만 형성된다’ 등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첫 번째 공간에서는 가족과 친구, 연인, 예술가 등 작가의 삶에 깊숙이 자리한 인물들의 초상과 조각을 만날 수 있다. 이다에게 초상은 얼굴을 닮게 그리는 작업이 아니다. 사진 속 한때의 모습과 시간이 흐르며 달라진 자신의 기억을 겹쳐 인물의 ‘존재’를 그려내는 일이다.특히 젊은 시절 가까운 친구를 잃은 경험은 작가에게 기억과 삶, 죽음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됐다. 그래서 그의 초상에는 살아 있는 사람과 이미 떠난 사람,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시간처럼 포개진다. 화면에 두껍게 쌓인 물감 역시 단순한 회화적 장식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과 감정의 흔적처럼 읽힌다.▲두 번째 공간은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경주에서의 경험이 작가의 기억을 거쳐 새로운 풍경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이다는 오랜 시간 이어온 스케치북 작업에서 출발한 'From a Sketchbook' 연작 가운데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중 'From a Sketchbook' #7, #8은 경주의 고분군과 도시를 직접 마주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천년의 시간을 품은 왕릉과 그 곁을 오가는 오늘의 일상, 오래된 풍경에서 느낀 고요와 시간의 층위가 작가 개인의 기억과 만나 화면 위에서 새로운 풍경으로 바뀐다.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아도 그날의 빛과 공기, 감정은 결코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것. 경주는 이다에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개인의 시간과 도시의 시간이 겹쳐지는 특별한 장소가 된 셈이다.
▲세 번째 공간에서는 기억의 범위가 개인을 넘어 미술사로 확장된다. 피카소의 'Guernica', 벨라스케스의 'Las Meninas', 쿠르베의 작품 등 미술사의 걸작을 자신의 회화 언어로 다시 풀어낸 오마주 작품들이 소개된다.이다는 거장의 작품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강렬한 붓질과 두터운 물감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면서 미술사의 기억에 자신의 현재를 덧붙인다.▲네 번째 공간에 들어서면 ‘기억’은 보다 사적인 일상의 기록으로 가까워진다. 대표 연작 '오늘의 끝'이다.이다는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한다. 그날 만난 사람과 풍경,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한 화면에 담는다. 그렇게 한 점 한 점 쌓인 작품은 결국 작가가 살아온 시간을 기록한 거대한 시각적 일기가 된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사라짐’이라는 조금 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한다. 작가는 자신의 캔버스를 직접 불태우는 영상을 통해 작품의 생성과 소멸을 보여준다.불길 속에서 회화의 물질적 형태는 사라지지만 작품을 만들기 위해 보낸 시간과 그것을 바라본 경험 등 기억의 역할은 더욱 선명해진다.이번 전시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사람의 얼굴도, 한 도시의 풍경도, 하루의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그러나 그것을 경험했던 흔적은 기억이라는 보이지 않는 층위에 남아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오아르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이다 유키마사의 작업을 통해 기억이 현재의 감각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며 “경주라는 장소의 시간과 작가 개인의 기억이 만난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도 자신의 기억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전시는 오아르미술관 2층과 지하 1층에서 열린다.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며 매주 화요일은 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