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뼈 사기그릇처럼 부서지고 / 부서진 뼈, 칼이 되어 나를 찔렀다 / 오, 폐차 직전의 슬픈 육신아// 불행하구나 시인이여 /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내 슬픔도 나의 저녁도 / 한 번뿐인 나의 생이다// -김성춘 시 ‘근황’ 중에서. 
 
강물처럼 흘러온 세월의 끝자락에서 여섯 원로시인이 다시 한 권의 시집으로 해후했다.
부산·안동·경산·울산·경주에서 한 시대를 살아낸 시인들의 문학적 생애가 시선집을 통해, 서로 만나고 지나온 고백적 시간이 시가 되어 다시 흐른다.
등단 50년 안팎의 영남권 원로시인 김성춘·김원길·김이대·도광의·박종해·정민호 시인이 최근 합동 시집 '세월의 강'을 펴냈다. 월간문학출판부에서 출간된 이번 시집은 ‘6인시 앤솔로지’를 부제로 한다.구순을 바라보거나 그에 가까운 시인들이 한평생 품어온 꿈과 사랑, 고향과 이별, 기쁨과 슬픔을 한데 묶었다는 점에서 '세월의 강'은 합동시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인의 가슴에도 저마다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세월의 강은 그리움이고 자유이며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정민호 시인의 머리글 문장처럼 ‘강’은 여섯 시인을 잇는 가장 큰 공통분모다. 형산강과 금호강, 태화강, 반변천 등 저마다의 강과 인연을 맺고 살아온 이들은 주로 동해남부시 동인으로 활동했거나 문학을 통해 인연을 이어왔다. 이들이 젊은 날 경주 고려다방에 모여 문학을 이야기하던 기억도 이제는 아득한 풍경으로 다가온다.이번 시집 구성은 매우 의미있어 보인다. 여섯 시인은 각자 ‘강’을 소재로 한 작품을 첫머리에 배치하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자선시와 문단에 첫발을 내디뎠던 등단작을 마지막에 함께 실었다. 
 
여섯 시인의 시작과 현재를 한 권에서 마주하게 한 것이다. 반세기 전 젊은 시인의 목소리와 오늘의 원숙한 시인의 목소리가 나란히 놓인 셈이다. 김성춘 시인은 1974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최근 ‘근황’을 비롯해 삶의 상처와 육신의 시간마저 시로 끌어안는 작품에서는 원로 시인의 깊은 성찰이 묻어난다.김원길 시인은 197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해 옥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김이대 시인은 1978년 '자유문예'로 등단해 자연과 고향, 삶의 기억을 노래한다.도광의 시인은 196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197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에는 지역의 구체적인 풍경과 그곳에 켜켜이 쌓인 시간이 담겼다.박종해 시인은 1968년 '울산문학'에 입회한 뒤 198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울산문인협회장, 울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장 등을 역임했다. ‘정민호 시인은 1966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동리목월문학관 관장 등을 지냈으며 오랜 세월 다듬어온 서정과 사유를 작품으로 구현한다.정민호 시인은 이번 앤솔로지를 “살아오면서 만나고 헤어지던 문우들과의 인연의 끈을 한데 묶어, 서로가 그리울 때 서로 시로서 만나기 위해 엮은 시집”이라고 소개했다.그래서 젊은 날의 문학적 열정과 우정, 오랜 세월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낸 삶의 무게가 시와 함께 되살아난다. 특히 등단작과 현재의 작품을 함께 수록한 구성은 이 시집의 가치를 더욱 깊게 한다. 1960~1970년대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여섯 시인의 출발점과 오늘의 언어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현대시의 한 흐름과 영남 지역문학의 반세기를 돌아보게 하는 기록적인 측면도 지닌다.
'한 번뿐인 생'을 시로 건너온 여섯 시인. 시집 '세월의 강'은 그들이 흘러온 세월의 기록이자, 끝내 시를 놓지 않았던 시인들의 아름다운 동행서에 다름없다. 
 
'그리울 때마다 시를 통해 다시 만나자'는 오래된 약속이 가슴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