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공간이 너무 좁아서 넓혀야 한다고 일찍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무실을 옮기었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사무실은 그저 일만 잘할 수 있는 곳이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내게 직원들은 다른 신호를 보낸다. 물론 일부 직원들은 이사를 앞두고 리모델링하는 사무실을 미리 방문하는가 하는 등 내심 기대가 큰 것처럼 보였다. 이사 기간에 맞춰 여름휴가를 보내고 새 사무실로 출근하니 직원들의 표정이 밝다. 사무실의 이전이 내겐 아주 소소한 변화였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를 나와 다른 변화로 받아들였다. 아마도 그들에겐 엄청난 변화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했다. 즉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와 일맥상통한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 자체가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변화 자체를 잘 받아들여야 하는데, 직원들의 마음가짐이 긍정적이어서 다행이다. “사무실을 왜 옮겨야 하지?”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다면, 그들에겐 사무실 이전이 불필요한 일로 여겼을 것이다. 변화의 정도를 알아차리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다. 하나는 감성(또는 정성, 定性)적으로 느껴서 알게 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량(定量)적으로 분석·파악하여 알아차린다. 사무실 이전에 대해 나와 직원들은 서로 다른 정도의 변화로 받아들였는데, 물론 이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이다. 변화를 정량적으로 판단해야 할 경우, 이를 말 그대로 정량적으로 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옌스 포엘의 책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에서도 나오듯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만 측정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또한 물질적인 변화가 있더라도 미시 세계, 즉 아(亞)원자 세계에서는 측정 자체가 결정론(determinism)적인 개념이 아닌 확률 개념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알아차린다는 것은, ‘어떤 사실이나 변화를 눈치채거나 깨닫는다’라는 것이다. 또한 문맥에 따라 ‘미리 짐작해 알아보다’처럼 예감·추측의 뉘앙스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이해한다’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 이해한다는 것은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아는 것이다. 여기에는 앞의 정의에서처럼 현재의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문제는 현재의 사실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잘 알아차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최근의 뜨거운 주제 중 하나인 기후를 예로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은 이를 ‘기후 위기’라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연스럽게 ‘기후 변화’라 말한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온난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구의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말한다. 기후 위기라고 하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조치해도 늦었다고 말한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온도가 섭씨 1.5도 이상 증가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 후대 세대를 위해서라도 충격적인 조치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기후 변화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좀 더 온건적이다. 서서히 그리고 완만하게 대응해도 된다고 말한다. 기후 변화에 대해서 인정하되 인간 활동과의 직접 연결은 과학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반면 지구는 수만 년 동안 기온이 변해 왔고, 현재의 변화도 자연 순환의 일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의 기후는 태양활동·자전·공전·빙하기와 간빙기 주기 등 자연 요인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동일한 사실을 두고도 서로 다른 낱말을 미묘하게 써가며 매우 다른 주장을 펼친다. 이처럼 과학적 사실의 해석은 복잡하고 따라서 한마디로 명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즉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그러니 뿌옇게 보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정치적 의제로 넘어가면 본래의 과학적 사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러면서 단순한 이미지나 메시지만 남는다. 사실이 있어야 이에 대한 현상을 파악할 수 있고 문제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이 사라지니 이에 대한 과학적인 해결책은 온 데 간 데가 없게 되고 만다. 단순한 이미지나 메시지는 엉뚱한 처방책이 되어 주위를 난무하고 어지럽힌다. 이는 지식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편향(bias) 때문이다. 물론 지식 자체도 현재까지 우리가 공동으로 이해한 사실일 뿐이다. 그렇기에 온전치 못하다. ‘가장 오래된 유물’을 발견했어도 어차피 부질없다. 가장 오래된 유물은 실제로는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유물’일 뿐이다. 그런데 자신이 겨우 알고 있는 한 줌 지식으로 온전히 이해했다는 생각은 엄청난 모순이다. 이것이 편향이다. 우주의 대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를 하나하나, 한발 한발 디디고 가야 할 뿐이다. 이것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과정이다. 새로운 사무실로 함께 옮긴 벵갈고무나무가 물을 달라고 재촉한다. 이를 알아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을 때가 많다. 적기에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식물학자도 아닌 내가 나무의 상태를 안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라일리 블랙의 책 『식물이 바꾼 지구의 역사』에 “잠시 멈춰 다른 생물들과의 연결점을 찾고 그들의 삶을 떠올려 보면, 꽃잎 속의 꽃잎처럼 무수히 다양한 자연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다.”라고 나온다. 따라서 나무의 변화를 주의 깊게 잘 살펴봐야 한다. 뿌옇던 경계가 아주 조금 걷힌다. 그러면 나무가 아주 조금 더 보인다. 
 
나무가 나에게 말한다. ‘내겐 지금 물이 필요해!’ 아니 ‘내게 지금 물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아!’ 낱말을 이미지나 메시지로 옮길 때 자세히 살피고 또 살펴봐야 한다. 이때 겸허함은 필수다. 겸손은 전혀 힘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