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태평양전쟁 말기 조선인의 추석 풍속과 조상 제례는 물론 의복과 일상생활까지 통제했던 사실과 조선 국민 모두가 당시 절약해 5원을 절약해 저축하라는 내용을 공포한 2가지 사실이 담긴 사료가 공개됐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박사가 입수해 공개한 이 문서는 1943년 9월께 작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추석을 앞두고 작성된 문서에는 전시 총동원체제인 이른바 ‘결전생활’을 실천하기 위한 각종 생활수칙이 담겨 있다.눈에 띄는 대목은 ▲전시를 위해 5원을 절약해 저축하라는 것과 ▲추석 제례에 대한 통제 내용이다. 문서에는 “추석 제사에는 떡을 절대로 만들지 말고 폐지할 것”이라는 취지의 지시가 담겼으며, 기제사에서도 떡을 만들지 못하도록 했다.조상에게 차례를 올리고 떡과 음식을 마련하는 것은 당시 조선인의 대표적인 명절 풍속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쌀을 비롯한 식량을 전쟁 수행을 위한 물자로 간주하고 조선인의 식생활까지 통제한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문서에는 매일 아침 일본 천황이 있는 궁성을 향해 절하는 ‘궁성요배’를 실시하고 정오에는 묵도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조상에게 절하는 전통적인 제례는 억제하면서 천황을 향한 요배(절)를 강요한 것이다.
여기에는 관혼상제 때 조선식 복장을 입지 말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여성들에게는 외출할 때 ‘몸빼’를 착용하도록 했다. 명절을 비롯한 각종 행사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민속을 폐지하라는 내용도 확인된다.이는 단순한 절약운동을 넘어 조선인의 전통적인 생활양식 자체를 바꾸려 한 일제의 식민통치 정책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특히 1943년은 태평양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일제의 전시 총동원체제가 더욱 강화되던 시기다. 일제는 조선에서 생산되는 쌀의 공출을 확대하고 절미정책 등을 추진하면서 식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이 과정에서 추석에 차리는 떡과 음식마저 통제 대상이 됐다. 쌀 한 톨과 노동력뿐 아니라 명절을 보내는 방식과 조상을 기리는 의례까지 전쟁 수행을 위한 통제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문서에는 경상북도 지역의 관련 기관과 단체 명칭도 등장해 중앙의 전시동원 지시가 지방 행정조직과 주민조직을 통해 실제 주민들의 생활 속으로 전달됐음을 보여준다.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는 이번 자료는 일제의 전시 총동원정책이 군인과 노동력 동원에만 머물지 않고 식생활·의복·제례·민속 등 조선인의 일상 전반을 대상으로 했음을 보여주는 사료라는 점에서 의미를 담는다.관련 내용은 미즈노 나오키 외의 ‘식민지 조선인의 삶’에서도 ‘차례의 떡을 금하라, 여자는 몸빼이를 입어라’ 등의 사례로 소개된 바 있다.추석을 앞두고 조상에게 올릴 떡마저 금지했던 1943년의 문서는 전쟁이라는 명분 아래 조선인의 삶과 전통문화가 어디까지 통제됐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로 남아 있다.이번 문서는 일제가 전쟁 수행을 위해 조선인의 경제생활뿐 아니라 의식주와 제례, 전통 민속까지 세밀하게 통제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특히 살아 있는 조선인뿐 아니라 조상에게 올리는 차례와 제사마저 통제했다는 점에서,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탄압의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관련 내용은 미즈노 나오키 외 3인이 저술한 '식민지 조선인의 삶'에도 소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