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신종은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종입니다"
 
가을밤, 국립경주박물관에선 귀뚜라미가 빚어내는 자연음과 1300년 전 신라인이 만들어낸 거대한 종소리가 한자리에서 어우러졌다. 오래된 종의 울림은 장애와 세대, 환경의 차이를 넘어 모두가 함께 듣고 느낄 수 있는 소리였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지난 15일 성덕대왕신종 종각에서 개최한 ‘성덕대왕신종 타음조사 공개회Ⅱ-모두를 위한 울림’ 속에서 참가자들은 위로와 평화, 화합의 의미를 나누며 천년을 넘어 이어지는 문화유산의 시간을 경험했다.
이날 공개회에는 성덕대왕신종이 완성된 771년의 의미를 담아 사전 추첨으로 선정된 국민 771명을 비롯해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경주지역 이주배경학생, 관련 연구자 등이 함께했다.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성덕대왕신종의 울림을 마주했다는 점에서 이번 공개회는 문화유산 향유의 경계를 넓힌 자리기도 했다.
청각장애인 참여자들을 위해서는 보청기용 히어링 루프와 실시간 수어통역을 제공했다. 본격적인 타종에 앞서 시각장애인 전통음악 연주단체인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 ‘생소병주-수룡음’과 ‘모두의 노래 아리랑’을 선보이며 현장의 문을 열었다.이어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총 12회의 타종이 진행됐다. 현장에 모인 참가자들은 그동안 녹음자료 등으로 접해왔던 성덕대왕신종의 울림을 실제 공간에서 직접 경험했다. 행사는 국립경주박물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이날 성덕대왕신종의 타종은 원천수 주철장 이수자와 이재권 국립경주박물관 직원이 맡았다. 특히 박물관 직원이 직접 타종자로 참여한 것은 올해 공개회의 또 다른 의미로 꼽힌다.이재권 씨에게도 이번 타종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1300년 전 신라인이 만든 소리를 제가 직접 울린다는 생각에 많이 긴장됐지만 매우 영광스러웠습니다. 원천수 주철장 이수자께서 잘 이끌어주신 덕분에 무사히 타종할 수 있었습니다”그들은 실제 타종에 앞서 경주 시내에 재현된 ‘신라대종’을 여러 차례 타종하며 감각을 익혔다고 한다. 무엇보다 신종의 보존을 위해 타종 강도를 세심하게 조절했다. “힘을 100% 다 쓰는 것이 아니라 60~70% 정도만 실어 타종했고 종의 보존을 생각해 타종 세기를 조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공개회에 앞서 국립경주박물관은 14일부터 15일까지 성덕대왕신종 종각에서 2026년 성덕대왕신종 타음조사를 진행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5개년 정기 타음조사의 두 번째 조사다.성덕대왕신종은 771년(혜공왕 7년) 완성된 신라의 대표적인 범종이다. 웅장한 규모와 아름다운 문양, 독특하고 장엄한 종소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992년 정기 타종을 중단한 이후 종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여러 차례 타음조사를 실시해왔다.
이번 조사의 핵심은 종의 음향과 진동 특성을 과학적으로 기록하고 과거 조사자료와 비교하는 데 있다. 고유주파수와 진동 특성, 맥놀이 등을 측정하는 한편 타종 세기를 달리해 강도 변화에 따른 음향 변화 데이터도 확보했다.1200년 이상 보존돼 온 대형 금속문화유산의 경우 현재의 상태를 동일한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한 변화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장기간 축적된 자료가 있어야 향후 나타날 수 있는 미세한 변화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국립경주박물관은 1996년을 시작으로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타음조사를 이어오며 음향·진동 특성에 관한 자료를 축적해왔다. 지난해 시작한 5개년 정기조사는 이러한 장기 데이터를 이어가는 동시에 조사·분석 방법을 보완해 성덕대왕신종에 적합한 조사 방법과 조사 주기, 상태 점검 기준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성덕대왕신종 타음조사는 종의 상태를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보존관리와 활용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며 “조사 현장을 국민과 함께 나누며 그 울림을 모두 함께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박물관은 앞으로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협력해 타종 조건에 따른 음향 변화와 기존 조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성덕대왕신종에 적합한 조사 방법과 주기, 타종 강도, 상태 점검 기준 등을 단계적으로 구체화하고 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상태 변화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보존관리 체계와 타종 매뉴얼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