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후반 동네마다 주산학원 한 곳은 있었다. 주산학원에선 암산도 병행했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믿음이 컸다. 주산 급수시험은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하지만 전자계산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주산학원 간판이 하나둘 내려갔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기사 작성을 위해 자료를 찾으려면 사내 조사부를 찾거나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발품을 팔아야 했다. 이러한 수고는 인터넷과 검색엔진이 나오면서 점점 사라져 갔다. 머리를 써야 하던 일을 기술 도구에 맡기는 '인지적 외주화'의 영역이 넓어진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벳시 스패로 교수팀은 2011년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내놨다. 인터넷에서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정보는 굳이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구글 효과'다. 인터넷은 자료 찾는 수고뿐 아니라 기억하는 수고까지 덜어줬다. 이후 2010년대 스마트폰 대중화로 우리의 기억은 점점 스마트폰으로 이식됐다.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어져 스마트폰 속 연락처는 전화번호를, 캘린더는 일정·약속을, 내비게이션은 길을 대신 기억한다. 검색엔진은 자료를 찾아줬다. 자료를 읽는 것은 인간의 몫이었다. 인공지능(AI)은 그마저 대신한다. AI는 셈하고, 찾고, 기억하고, 요약하고 비교·추론하고 문장까지 짓는다. 지난해 MIT 미디어랩 연구 결과 챗GPT, 검색엔진, 자신의 힘만으로 에세이를 쓰는 세 집단의 뇌 활동 비교 결과 챗GPT 사용 집단은 뇌 연결성이 상대적으로 낮았고 자신이 쓴 글을 정확하게 인용하는 데도 어려움을 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카네기멜런대 연구진이 지식노동자의 AI 활용 사례 조사 결과에서도 AI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비판적으로 따지는 노력은 줄어들었다.인지적 외주화가 인간의 백치화를 부추기는 건 아니다. 다만 첨단 기술에 의존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공교롭게 최근 AI 업계에서 속도조절론이 나오고 있다. 인간에게도 속도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최소한 두 가지는 붙들어야 한다. AI의 답변을 초안으로 여기고 원문과 출처를 확인하는 'AI 문해력'과 그 논리를 의심하고 따져보는 '비판적 사고'다. 지금 두려운 것은 AI가 똑똑해지는 게 아니다. 인간이 점점 생각하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