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를 읽다보면 유독 해석이 명쾌하지 못한 부분이 곳곳 드러난다.  이는 찬자의 불명확한 기술로 인해 번역에 어려움을 주는 경우다. 또 역주자들마다 이견을 보인다는 것은 중층의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전후소장사리에 나오는 무간(無間)은 불교용어로 보면 무간지옥을 의미하며 뜻풀이로 보면 틈이 없다와 허물없이 친한 사이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문맥의 앞뒤 전후관계를 고려하여 풀이해야만 명확해 진다. 유사에는 경주의 황룡사탑이 불타던 날 통도사의 금강계단 돌함의 동쪽면에 커다란 얼룩(대반)이 생겼는데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무의자가 남긴 시에 황룡사탑이 불타던 날 /연소일면시무간(連燒一面示無間)이라 한 것이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라고 했다.  연소일면시무간(連燒一面示無間)을 북한학자 이상호는 불에 탄 돌솥 한쪽면은 지옥이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네 라며 무간을 지옥으로 해석했다. 이범교 역시 연이어 불에 탄 한쪽면은 무간지옥을 보여주네 로 해석했다.  반면 이병도 김원중은 무간을 틈이없다로 풀이하고 있다. 이병도는 이어 탄 일면에도 틈 난데가 없었네 라고 했고 김원중은 타버린 한쪽면에도 틈이 없었네 라고 해석했다. 대부분의 다른 학자들도 이 범주의 해석에 머물러 있다.  풀이를 보고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연이어 불탄 대상은 통도사의 사리함 돌확인 것이다. 때문에 이상호는 직역이 아닌 의역으로 돌솥 한쪽면이라고 대상을 정확하게 지칭하고 있다.  이 문장 해석의 키워드는 연이어 탄 통도사 사리함 돌뚜껑의 상태다. 또 연소일면(連燒一面)의 풀이에서 연이어 탄 한쪽면, 이어 탄 일면 등으로 역자마다 미묘한 차이를 보이지만 이상호처럼 돌솥의 한면으로 대상을 확정하면 명확해 진다.  반면 무간을 절친하다로 해석할 수 있다. 무의자는 자장이 사리 100과를 가져와 황룡사탑과 태화사 통도사에 삼분장 한 것과 탑이 불타던 날 통도사의 사리함 돌뚜껑에 얼룩이 생겼다는 세간의 말에 모티브를 얻어 '사리'라는 시를 지었다. -부처님 사리 높은 계단을 누르고 엎어놓은 솥 허리가에 불탄 흔적 보이네. 황룡사 탑이 불타던 날 덩달아 한 면(面)이 타서 절친함을 보였네(連燒一面示無間)  돌뚜컹의 상태를 지옥이나 틈이없다 가 아니라 절친함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무의자는 경주의 황룡사탑이 불탄 것과 통도사의 사리함 돌 뚜껑에 생긴 얼룩을 대비시켜 시로 읊었다.  탑이 불타자 사리함도 불탄 것처럼 변화를(얼룩이 생겨남) 보였다는 세간의 말에 이 둘의 관계는 마치 감응을 일으킬 만큼 절친한 사이 또는 동병상련,의리를 보인 것에 방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또 탑이 불타던 날 사리함에 얼룩이 생겼다는 동시성을 감안하면 감응으로 볼 여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기존의 해석대로 불탄 흔적을 무간지옥으로 볼 수도 있고 얼룩만 남았기에 밀폐성에 방점을 두고 틈이없다 로 해석할 수 도 있다. 문제는 해석의 명확성과 전달성이다. 무의자가 표현하고자 했던 무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다. -황룡사탑이 불타던 날 돌함의 동쪽면에 커다란 얼룩(대반)이 생겼는데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무의자가 남긴 시에 황룡사탑이 불타던 날 /덩달아 (사리함의)한 면이 타서 감응(절친함)을 보였네 라 한 것이 이것이다.  이제 통도사 사리함에도 무더위가 가고 바람이 시원해(?) 졌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황룡사의 화재에 통도사의 사리함이 얼룩으로 감응했듯이 탑과 사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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