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8월 1일 아침,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금메달을 땄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양정모의 금메달 하나는 국가의 체육정책까지 바꿔놓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양정모와 정동구 코치를 청와대로 불러 "어떻게 하면 우리도 금메달을 많이 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정 코치는 동독을 예로 들며 엘리트 선수를 전문적으로 육성할 기관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듬해 3월 한국체육대학이 문을 열었다.예술·체육 분야의 병역특례도 그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흐른 지금, 후진국을 막 벗어나던 시절의 빛나는 유산은 선진국 대한민국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특혜라는 시선을 받고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 야구 한일전 논란은 달라진 시대와 국민의 눈높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십억, 수백억을 버는 프로 선수들이 낮에 일하고 밤에 훈련하는 사회인 야구팀을 꺾고 환호하는 모습에 국민은 '참 잘했다'보다 '뭐가 저렇게까지 좋을까'라는 시선을 보냈다. 운동이 가난을 벗어나는 탈출구이자 신분 상승의 사다리였던 시대는 오래전 끝났다. 음악과 미술은 물론 스포츠도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부모의 권유나 자신의 적성과 선택에 따라 뛰어드는 전문직의 영역이 됐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재능을 펼치는 사람에게 국가가 왜 병역에서까지 특별대우를 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공정'을 묻는 청년들의 눈높이에 '국위선양'이라는 반세기 전의 명분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방탄소년단(BTS)조차 군 복무를 마친 마당에 메달 하나로 병역면제를 누리는 제도를 그들이 어떻게 납득하겠는가.그렇다고 피땀 흘려 닦은 세계적 재능을 병영 안에 묶어두자는 뜻은 아니다. 특례라는 이름의 예외를 걷어내고 실질적인 공공 대체복무로 전환하면 된다. 구색 맞추기식 봉사활동 대신 일정 기간 군복을 입고 유소년과 장애인, 문화 소외계층을 가르치고 지도하며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돌려주도록 제도를 다시 짜야 한다. 양정모의 금메달을 축하하던 시절의 국민들의 그 순수함을 지금 잣대로 재단해 깎아내려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감격은 역사로 간직하되 반세기가 넘은 제도는 이제 시대 변화에 맞게 바꿔야 한다. 연합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