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법관 후보 제청 문제에 대해 "국회와 대통령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국회의 동의와 대통령의 임명에 개입하지 못하듯, 두 기관도 자신의 제청에 간섭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청와대도 재제청을 요구한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현재로선 대통령과 대법원장 모두 물러설 기색이 없어 보인다.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최고 권력은 국민, 국민주권. 그리고 직접선출 권력, 간접선출 권력"이라고 했다. "임명 권력은 2차적으로 권한을 다시 나눠 받은 것"이라고도 했다. 국민, 선출권력, 임명권력 순으로 내려가는 위계를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는 선거로, 사법부는 임명으로 그 자리에 오를 뿐 각 기관의 권한과 범위는 모두 헌법이 정한다. 사법부는 임명권력이지만, 선출권력으로부터 권한을 떼어 받은 하부기관이 아니다.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느냐와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한 문장 안에 세 기관의 권한을 수평으로 놓았다는 점이다. 어느 기관도 남의 몫을 침범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통령과 국회는 제청 이유를 물을 수 있다. 그러나 특정인을 제청하라고 압박하는 건 권한 밖의 일이다. 대법원장도 제청권을 지킬 수 있다. 그렇다고 후보를 고른 이유에 대한 설명도, 대통령과의 협의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1949년 법원조직법 제정 과정에서 이승만 행정부와 김병로 사법부는 법관 인사권을 놓고 맞선 바 있다. 쟁점은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기에 앞서 법관회의의 제청을 거치도록 할 수 있느냐였다. 당시 법관회의 제청은 현재 대법관 제청과는 같지 않다. 그러나 임명권을 한 기관에 온전히 맡길 것인가 하는 물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다. 양측이 버티는 사이 대법관 공백이 길어지고 재판은 늦어진다. 누가 더 높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이 제때 재판받도록 대법관 빈자리를 채우는 게 먼저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