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옮긴 후, 바뀐 일상의 습관들을 일일이 헤아려보지는 않았지만 여럿 있다. 이 중 사소하게 바뀐 것 중의 하나가 커피를 마시는 방법이다. 옮긴 사무실에는 직원들이 함께 모여 커피를 한잔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는데, 소박하지만 아늑하게 꾸몄다.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하니, 형식만이 아닌 내용까지 갖춘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의 범위가 넓어질 거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 공간에 내용을 갖추기 위해 특별한 강좌들을 시리즈로 마련해 실행하고 있다. 이전에는 국립경주박물관장을 모시고 경주의 문화재, 그중에서 특히 왕관을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오늘은 직원들이 평소 한 잔 커피를 마시기 전까지 어떻게(어떤 과정, 방법을 거쳐서) 나에게 왔는지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더구나 이번의 주제는 공간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강좌이기에 많은 직원이 참석하여 분위기를 달구었다. 이뿐만 아니라 커피와 와인의 공통점, 그리고 이에 깔린 문화 등을 알게 됐다. 이 앎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지식이다. 본질적인 지식이란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잘 어울린 것이기 때문이다. 시리즈별로 마련된 텍스트들은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따라서 이를 잘 엮어야 한다. 잘못 엮으면 얼기설기 짜여 보인다. 어딘지 뭔가 불편하다. 반면 이를 씨줄과 날줄로 잘 엮으면 매우 아름답게 빛난다. 텍스트를 잘 어울리게 콘텍스트화(化)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잘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상상력이다. 풍부한 상상력을 갖춘 직원들은 결국 이곳에서 상상조차 어려운 멋진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작가 에드가 앨런 포는 상상력을 매우 독창적으로 정의했다. 그는 상상력이란 아름다움과 추함, 또는 그에 준하는 상반된 요소들 사이에서 새로운 제3의 성질을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보았다. 이를 통해, 예컨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모순 속의 조화를 상상력의 산물로 제시했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는 상상력은 익숙한 것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연결하는 창조적 사고의 원천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일할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멋진 보고서(일할 계획)도 대개 혼자 할 수는 없다. 주변의 동료와 함께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sympathy)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그 감정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의 그 감정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한다. 그럼으로써 그 감정을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상상력 속에서 그 감정을 떠올릴 때 연민이나 동정의 감정이 일어난다. 상상력은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따라서 상상력이 없다면 공감할 수 없다. 그것은 곧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상상력을 갖추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책 읽기다. 아담 스미스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연극, 소설, 역사책을 많이 접할 것을 권한다. 실제로 그는 『도덕 감정론』에서 볼테르의 희곡, 셰익스피어의 『햄릿』, 중산층의 삶을 다룬 당시 유행하던 소설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등 고전 문학과 역사책을 상상력 계발의 주요 도구로 언급한다. 지난 9월 AI가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문제’를 풀었던 다음 날,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테렌스 타오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말했다. AI 기업들의 최근 행태는 수학자들의 식탁에 손질도 안 된 고깃덩어리를 던져놓고 ‘당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했다.’라며 그냥 떠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하자면 ‘타오의 생고기론’이다. 인간이 92년간 풀지 못한 이 난제를 AI는 88시간 안에 풀었다. AI에 의한 지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 현재의 지식을 대체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기존 지식과의 충돌로 인한 모순을 마주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이 모순을 검증가능한 이론으로 만든다. 이후 최종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지식의 수정·보완의 단계를 거쳐 다른 사람 모두가 공유하고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이 탄생한다. 그런데 AI가 만든 것은 이 과정을 건너뛴다. 지식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것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답할 질문을 찾는 것이다. 답보다 무엇이 의미 있고, 옳은 질문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인간의 본질을 만드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삶을 돌아보면 질문은 이처럼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든다. 이때 질문의 힘은 상상력에서 나온다. 한 회사의 리더로서 생각해 본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책 『리더는 언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에서 역사는 영웅적이고 뛰어난 리더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톨스토이처럼 리더는 단지 ‘역사의 노예’라고 칭했다고 언급한다. 따라서 진짜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떤 상황에서 리더가 차이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가장 높은가”가 된다고 말한다. 차이를 만들어낼, 즉 최고의 결과를 만들 수 있는 리더는 ‘미친’ 상상력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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