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아리랑?’ 처음 그 이름을 접했을 때 의외였다. 영천에도 아리랑이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궁금해 그 흔적을 따라가 보니 더욱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고향에서 한때 희미해진 노래가 사람들을 따라 국경을 넘어갔다가 오랜 세월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아리랑은 사람을 따라 길을 떠난 노래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며 시대마다 서로 다른 삶의 시간을 품어왔지만, 영천아리랑만큼 특별한 여정을 걸어온 노래도 드물다. 영천에서 불리던 노래는 일제강점기 이주민들과 함께 만주 등지로 건너갔고, 중국 동포사회와 북한에서 명맥을 이어오다 다시 고향에서 되살아났다. 그래서 영천아리랑은 떠남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귀향의 노래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이 생존을 위해 만주와 중국 동북지역으로 향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집과 땅에서는 멀어졌지만 마음속 고향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낯선 타향에서 품고 살아간 것은 고향의 말과 풍경, 그리고 노래였다. 영천아리랑 역시 이러한 이주의 역사 속에서 사람을 따라 국경을 건넜다. 영천아리랑의 운명은 특별했다. 많은 민요가 본고장을 중심으로 전승된 것과 달리 영천에서는 그 맥이 한때 희미해졌지만, 중국 동포사회와 북한에서는 노래가 이어졌다. 영천시 자료에도 중국과 북한에서 전승된 여러 형태의 영천아리랑 사설이 소개되어 있다. 고향에서는 잊혀가던 노래를 타향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떠난 이들에게 영천아리랑은 고향을 대신하는 문화의 언어이자 자신의 뿌리를 이어주는 기억의 끈이었을 것이다. 영천아리랑이 다시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데에는 분단을 넘어선 뜻밖의 계기가 있었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린 첫 남북정상회담 첫날 만찬장에서 영천아리랑이 흘러나왔다. 노랫말 속 ‘영천’을 두고 남측 일행이 의아해하자 북측에서는 사과가 많이 나는 경상도의 영천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남쪽에서 희미해진 고향의 노래가 분단의 경계를 넘어 북쪽에서 불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영천아리랑이 걸어온 특별한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천아리랑의 가락에는 흥겨움과 애잔함이 함께 흐른다. “아라린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북한에서 전해진 영천아리랑에도 이 익숙한 후렴이 남아 있다. 타향의 사람들에게 ‘영천’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었고, 잊을 수 없는 뿌리였으며, 마음속에 간직한 귀향의 장소였다. 이후 영천아리랑은 본고장에서 다시 생명력을 얻었다. 연구와 보존·전승 활동이 이어지고 공연과 축제로 영역도 넓어졌다. 2025년에는 ‘영천아리랑의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주제로 첫 학술포럼도 열렸다. 타향에서 살아남은 노래가 다시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말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아리랑은 시대와 지역마다 서로 다른 시간을 품는다. 정선아리랑이 산맥의 시간을, 진도아리랑이 바다의 시간을, 경기아리랑이 근대의 시간을, 밀양아리랑이 들불의 시간을, 재외동포 아리랑이 그리움의 시간을, DMZ의 아리랑이 기다림의 시간을 품고 있다면, 영천아리랑은 ‘귀향의 시간’을 품은 노래다. 떠남으로 시작된 노래의 역사가 돌아옴으로 이어진 것이다.영천아리랑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한다. 사람은 고향을 떠날 수 있어도 자신의 뿌리까지 떠날 수는 없다고.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지만 마음속에 간직한 노래는 국경과 분단의 시간까지 넘어 다시 고향을 찾아올 수 있다고.영천아리랑은 떠남과 그리움, 분단과 귀향, 상실과 회복을 함께 품은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귀향은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노래도 끝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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