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우리나라에서 3,924명이 고독사했다. 전년보다 7.2% 증가한 수치다. 하루 평균 10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남성이 81.7%였고, 50·60대가 전체의 62.9%를 차지했다.그런데 국정감사를 이틀 앞둔 지난 10월 5일,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또 하나 주목할 숫자가 드러났다. 지난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발굴한 고독사 위험군은 10만9654명이었다. 이 가운데 1만5193명은 위험군으로 확인된 뒤에도 아무런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이 숫자들은 고독사 문제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다시 묻게 한다.고독사는 단순히 혼자 맞이한 죽음의 문제가 아니다. 법이 말하는 고독사의 핵심도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살아왔다는 데 있다. 따라서 고독사는 죽음의 순간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고립의 시간까지 보아야 할 문제다.고독사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망자의 10명 중 6명 이상이 50·60대라는 사실은 사회와 가족의 중심에서 살아온 이들도 어느 순간 고립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이 연령대의 고립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실직이나 사업 실패로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고, 질병으로 일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혼이나 사별로 가까운 관계를 잃기도 한다. 직장과 가족을 중심으로 이어지던 인간관계가 느슨해지면, 어려움을 털어놓을 사람도 점차 줄어들 수 있다.여기에 심리적 장벽이 더해진다. 오랫동안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여겨온 사람일수록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을 약함이나 실패로 받아들일 수 있다. 경제적 위기는 수치심으로 이어지고, 반복된 좌절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기대하는 마음마저 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립이 깊어지면 단순히 사람들과 멀어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도움을 청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쌓이면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할 수 있다. 우울과 무기력이 더해질수록 도움을 요청할 힘도 약해진다.도움이 가장 절실한 사람이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역설이 여기서 생긴다.사회적 고립이 곧 정신질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립이 우울과 무기력을 심화시키고, 그 심리적 어려움이 다시 사람을 관계에서 멀어지게 하는 악순환은 정신의학적으로도 주목해야 할 문제다.따라서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도움을 거부한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나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작용할 수 있다. 한두 차례 전화나 방문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접촉을 중단한다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오히려 제도 밖에 남을 수 있다.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관리가 아니라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되, 관계를 이어가며 필요한 도움으로 연결하려는 접근이 중요하다.고독사 예방정책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경제·주거 지원, 정신건강 지원, 복지서비스가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이미 지쳐 있는 사람이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어려움을 반복해서 설명해야 한다면, 제도 자체가 또 하나의 장벽이 될 수 있다.예방정책의 성과도 몇 명을 위험군으로 찾아냈느냐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필요한 서비스로 실제 연결되었는지, 지원이 이어졌는지, 다시 사회와 관계를 맺을 기회를 얻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고독사 대책은 사망자를 찾아내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얼마나 빨리 발견했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일찍 그 고립을 발견했는가.그리고 그 뒤, 필요한 도움으로 실제 연결되었는가.고립된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먼저 발견하고, 관계를 이어가며, 필요한 도움에 닿게 하는 사회. 고독사를 줄이는 일은 결국 거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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