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The Odyssey’가 관객 1208만을 기록 중이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그리스의 음유시인 호메로스(Homeros, BC 8세기 경)의 각 1만5693행과 1만2110행의 서사시이며, 각기 2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 이야기는 세대를 이어와서, 오늘날 거장 감독의 영화로 전 세계인이 보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일리아드(Iliad, 트로이의 그리스어 이름 일리오스)’는 10년간 지속된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51일을 다루는데, 시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에서 헥토르의 죽음으로 트로이 몰락 직전에 끝이 난다. 트로이 목마 전설은 후일 오디세우스에게 일노시우스 왕이 베푼 연회에서 앞못보는 악사 도모도코스의 노래로 불려진다. ‘오디세이아(Odysseia)’에서는 고향 이타카로 가는 오디세우스가, 연합군의 총대장 아가멤논과 헤어지고 지중해를 떠도는 10년 간의 모험을 하게 된다. 영화는 그의 열두 척 함대가 부하들을 다 잃고 홀로 귀향하는 여정을 그린다.지난 10월 4일 EBS AI 고전 ‘오디세이아’ 편에는 눈먼 시인 호메로스가 칠현금을 타면서, 사람들의 연회에서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들려주었다. 듣는 이들은 도기에 포도주를 마시며 그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며 빠져든다.‘The Odyssy’에서 트로이 목마는 역동적인 말 조형물로 등장하는데, 놀란 감독이 영화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주연 찰턴 헤스턴, 1968)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자유의 여신상’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간에는 헬레네를 최고의 미녀로만 다룬 반면, 영화에서 흑인이 헬레네로 분한 점은 감독의 독특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트로이(Troy, 감독 볼프강 페트젠, 주연 브래드 피트, 에릭 바나, 2004)’는 오디세이아의 전편 ‘일리아드’에 해당한다. 영화는 ‘오디세이’에 비해 다소 할리우드적인데,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 왕 역에 피터 오툴(Peter O’toole, 1932~2013)이 등장한다. 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Lowrence of Arbia, 감독 데이비드 린, 1962)’에서 파란 눈으로, 낭만주의자인 로렌스를 연기했다. 마치 로렌스가 다시 돌아온 듯했다.하인리히 쉴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 솔로몬의 독일어)은 ‘일리아드’에 빠져 트로이를 발굴한 고고학자이자 언어의 천재인 백만장자였다. 그는 열네 살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잡화점 점원으로 일을 하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한 방앗간 주인이 호메로스의 시 100행을 그리스 원어로 음송했다. 쉴리만은 황홀하게 듣고 있었고 암송을 마치자 가진 돈을 털어 그에게 위스키 세 병을 사 주면서 다시 들려줄 것을 부탁했다. 이는 그에게 가난으로 잊어버린 트로이 발굴의 꿈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1890년 위대한 발굴자는 타계했다. 그의 유해가 아테네로 왔을 때 왕과 대신, 그리스 연구 기관의 수장들이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다. 호메로스의 흉상이 그리스를 열렬하게 사랑한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관 옆에는 그의 부인과 두 자녀가 서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안드로마케와 아가멤논이었다.나는 그리스 여행에서 트로이 정쟁이 시작된 스파르타(Sparta)와 오디세우스의 귀향 항해길, 튀르키예의 트로이에 가 보았다. 스파르타의 (라코니아 평원에서 딴) Laconia 호텔에서 주인 부녀가 있는데, 꼬마숙녀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아빠가 웃으며 ‘헬렌’ 이란다. 나는 깜짝 놀랐다. 헬렌(Helene)이라면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여인 아닌가? 힘들게 찾아간 그리스의 끝 스파타타로의 여정은 지금 생각해도 다행스럽다.트로이에서는 내가 묵은 (케러반들이 묵었던) 케러반사라이 호텔이 해변에 있어서, 동틀 무렵 바닷가에 나가보니 그 옛날 아침처럼 목마가 서 있다. 그리스 군이 남겨놓고 간 목마를, 트로이가 발견한 시간도 이 때였다. 아침 햇살에 바닷가에 서 있는 목마는 신령스러웠다. 지난 밤 내가 술을 마신 바닷가는 그 옛날 그리스 군이 있던 곳, 프리아모스 왕이 아들 핵토르의 시신을 달라고 아킬레우스의 손에 입을 맞춘 막사도 그 어디였다. 실로 감개가 무량하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향하던 바다, 그 바다를 무어라 표현할까? 니코스 카잔자키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가을의 부드러움과 각 섬 이름을 하나하나 중얼거리면서 이 바다를 항해하는 것보다 더 우리 마음을 천국으로 깊숙이 잠기게 하는 기쁨은 없다’.‘오디세이’ 영화를 세 번 보았다. 첫 번째는 어리둥절해서, 두 번째는 아이맥스로 보니 화면이 압도적이었다. 항해 장면에서는 돛을 펴자 흑선이 바다를 나는 듯했고, 폭풍우엔 지중해 바닷물이 얼굴로 튀었다. 세 번째 보니 문학적 서사가 들어온다. 고향을 찾아 망망대해를 뗏목에 지쳐 누워가는 오디세우스는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는 ‘일리아드’의 아킬레우스는 용맹한 영웅으로 바라보지만, ‘오디세이아’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방황과 좌절 속에서도 ‘이타카’라는 목표를 잃지 않고 돌아오는 오디세우스. 우리는 저마다 방황하는 오디세우스이자, 각자의 오디세이를 가고 있는 것이다.호메로스의 이야기는 플라톤에 전해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 이어진다. 이야기는 그의 제자인 ‘알렉안드로스’로 전해져 ‘영웅 아킬레우스’를 들은 그는 아킬레우스에 열광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동방원정에도 일리아드를 지녔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오디세이아를 애장했다.호메로스의 저술에는 다음 문장이 있다. ‘당신은 직접 아카이아 사람들과 같이 있으며, 바로 그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그 시대 수금을 타며 암송하는 종블래드(음유시인)의 노래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