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네 의원 안내문에서 뇌파검사라는 말을 자주 봅니다. 잠이 오지 않거나 기분이 가라앉아 병원을 찾았다가 머리에 전극을 붙여 본 분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2020년 7,085회이던 뇌파검사가 2024년에는 8만 3천여 회, 2025년에는 13만 4천여 회로 늘었습니다. 1년 사이에 61%, 5년 사이에 19배가 늘어난 셈입니다. 뇌전증을 진단하던 검사를 이제는 우울과 피로를 살피는 데에도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람이 눈으로 읽던 뇌파를 인공지능이 분석하면서 쓰임새가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뇌파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먼저 피를 뽑습니다. 혈당, 간 수치, 염증 수치처럼 숫자로 확인할 지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병리과 의사인 저는 조직을 현미경으로 보고 병을 진단합니다. 암이면 세포 모양이 달라지고, 염증이면 백혈구가 몰려듭니다. 그런데 만성 통증이나 우울증, 원인 모를 피로에 시달리는 분의 뇌는 현미경으로 보아도 이상이 없습니다. 구조는 멀쩡한데 기능만 어긋난 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힘든지 0점에서 10점 사이로 물어 진단합니다.뇌파검사는 두피에 전극을 붙여 신경세포가 내는 전기 신호를 기록합니다. 아프지 않고 방사선 노출도 없어,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뇌파에서 혈당 수치 같은 지표를 찾으려 했습니다. 우울증에만 나타나는 뇌파, 통증에만 나타나는 뇌파가 있으리라 기대한 것입니다. 결과는 번번이 기대에 어긋났습니다. 어렵게 찾은 변화가 다른 병에서도 똑같이 나타났고, 병을 구별하지 못하니 쓸모없다는 평가가 뒤따랐습니다.최근 독일 연구진이 이 실패를 달리 해석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만성 통증, 편두통, 병적 피로, 우울증을 다룬 연구 176편을 모아 보니 네 질환 모두에서 느린 뇌파가 늘어 있었습니다. 1초에 4번에서 8번 진동하는 세타파로, 원래는 졸릴 때 늘어나는 뇌파입니다. 연구진은 체온계에 비유합니다. 열은 감기에도 나고 폐렴에도 나지만, 의사는 열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것을 판단합니다. 느린 뇌파로 병명을 맞히려 하지 말고, 뇌 기능이 얼마나 흐트러졌는지를 재자는 것입니다.이렇게 보면 진료실에서 흔히 보던 일이 이해됩니다. 허리가 오래 아픈 분은 대개 우울하고 피곤하며 두통도 잦습니다. 통증은 정형외과에서, 두통은 신경과에서, 우울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따로 치료받지만 원인은 하나일 수 있습니다. 대뇌 피질의 박자를 잡는 시상이 느려지면 피질 전체가 그 박자에 끌려간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지휘자가 느려지면 악단 전체가 느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 가설이지만, 여러 증상이 왜 한 사람에게 겹쳐 오는지 짐작할 만합니다.그렇다고 지금 뇌파 한 번 찍어서 뇌 상태를 판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공지능이 뇌파를 빠르고 정밀하게 읽어 내더라도, 그 값이 한 사람에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따로 밝혀야 합니다.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세타파 값은 대부분 겹치고, 얼마를 넘으면 이상인지 정한 기준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런 병을 앓는 분은 대개 잠을 설칩니다. 눈을 감고 검사받다가 졸아서 세타파가 늘었는지, 병 때문에 늘었는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연구진도 많은 사람을 오래 추적해 확인하는 일이 먼저라고 말합니다.그래도 검사 결과는 늘 정상인데 몸은 계속 아팠던 분이라면 뇌파검사를 한 번 받아 볼 만합니다. 통증도 방사선 노출도 없고,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끝나는 검사입니다. 한 번의 검사로 병명을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뇌파를 기록해 두면 치료를 받은 뒤나 증상이 달라졌을 때 비교할 기준이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는 잘 보이지 않던 차이도 자신의 예전 기록과 비교하면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검사를 받기로 했다면 결과에 따라 치료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부터 물어보십시오. 진료실에서는 아픈 곳 한 군데만 말하지 말고 수면, 기분, 피로, 두통까지 함께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무관해 보이던 증상도 알고 보면 원인이 같을 수 있습니다. 혈액검사와 영상검사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고통이 뇌파에는 느린 파동으로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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