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름녘 길가에 홀로 선 고목을 지나치는 서늘한 바람결에, 문득 우리가 까맣게 잊고 지낸 바르고 고요했던 삶의 온기가 가슴 아리게 떠오른다.복지는 선의로 시작된다. 그러나 제도가 허울만 남고 책임이 빠질 때, 그 선의는 도리어 도덕적 해이를 키우고, 성실한 사람을 피해자로 만든다. 도움을 받아야 할 이들은 뒤로 밀리고, 제도의 빈틈을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자’가 되는 현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이들은, 묵묵히 제도 밖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지역 경제와 문화를 살리기 위한 사회단체 보조금도 마찬가지다. 취지는 좋지만, 관리와 윤리가 빠진 보조금은 알맹이 없는 행사, 사진만 남는 사업으로 전락한다. 세금으로 치러지는 축제가 책임감 대신 관성으로 운영될 때, 시민의 신뢰는 조용히 무너진다. 공공의 돈 앞에서조차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도덕불감증이 자리 잡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공동체 전체로 돌아온다.이 풍경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반복된다. 요즘 유튜브를 보면, 쌍욕과 거짓말, 타인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 조회수를 먹고 자란다. 정제된 언어보다 막말이, 사실보다 자극이, 품위보다 혐오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는다. 그렇게 번 돈이 상당하다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가치 기준을 다시 묻게 만든다.그래서 묻고 싶다. 역차별 속에 방치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땀 흘려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며, 인간의 도덕과 품위를 지키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이 되는가. 정직한 노동은 값어치가 떨어지고, 막말·허위·조롱은 오히려 ‘보상’을 받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누구를 위한 사회인가.정치권의 도덕불감증은 이런 허탈감을 더욱 키운다.이혜훈, 강선우 등 반복되는 정치인의 도덕 논란 앞에서 시민들은 분노보다 먼저 허무를 느낀다. 잘못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그 잘못을 대하는 태도다. 책임보다 변명이 앞설 때, 공정과 상식이라는 말은 공허한 구호로 남는다.도덕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질서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사회, 성실함이 조롱당하지 않는 사회, 품위를 지키는 것이 바보 취급받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 그래야 땀 흘린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고,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는다.복지도, 보조금도, 플랫폼도, 정치도 결국 한 가지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보상할 것인가.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도덕은 계속 손해가 되고, 사회는 점점 더 거칠어질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내로남불로 향하는 것 같아 불편한 사람이 많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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