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인간관계 맺기가 주저된다. 젊어서는 첫인상만 보고 상대방을 겪어보지도 않은 채 선뜻 마음을 열곤 했었다. 상대방에게 망설임 없이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게 그것이다.
돌이켜보니 얼마나 우매한 일이었던가. 이렇듯 솔직담백함은 천성 때문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자신에 대한 별다른 포장이나 경계심을 갖출 줄 모른다. 이런 성향은 항상 타인을 내 마음처럼 여기곤 해서이다. 이 때문인지 그동안 몇몇 사람으로부터 일명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이젠 지난날 그 순수성이 다소 오염된 듯하다. 각박한 세태에 사노라니 누군가를 내 마음처럼 철석같이 믿었다가는 여러모로 낭패 당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성이 완전히 바뀌진 않았다. 어찌 보면 이런 태도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어느 글 내용에 의하면 인간관계는 맺는 일보다 유지하기가 더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그 유지성에도 진실한 마음이 전부는 아닌 듯하다.
내 딴엔 상대방을 배려한답시고 신경 쓴 게 오히려 오해로 치닫기도 하고, 때론 약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어서이다. 즉 자신에게 유리하면 고맙다는 말조차 아끼잖은가. 그러다가 조금만 불리하거나 이해타산 저울 눈금이 손톱만큼이라도 비껴가면 질책하고 비난하기 예사이다.
도대체 우린 왜? 사소한 이익 앞에 이렇듯 이성을 잃을까? 타인이 베푼 호의나 배려에 감사할 줄도 모르잖는가. 너무 염치가 없다.
또한 눈앞의 이익 앞엔 상대방에 대한 신의(信義)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친다. 진실이나 진정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처세를 일삼는다. 이런 경우, 사람에 대한 실망이 참으로 커서 때론 상처로 다가온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말 한마디라도 타인을 위하여 배려하지 않는다. 무엇으로든 흠을 잡고 험담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한다. 뿐만 아니라 타인이 잘되면 시기와 질투가 극심하다. 그래서 옛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닌가 보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인간적인 인향(人香)을 풍기는 사람을 좀체 만나기가 어렵다. 향기로 치자면 자연의 향기도 일품이다. 그러나 그 향기가 기후 변화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주위로부터 사라지고 있다. 가을이면 누렇게 익어가는 모과나무의 모과만 하여도 향이 예전 같지가 않다.
불과 십 수 년 전만 하여도 가을날 잘 익은 모과 한 개만 집안에 들여놓아도 그 향이 현관문까지 진동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모과 고유의 향을 아무리 맡으려고 해도 맡을 수가 없다.
인향이란 무엇일까? 필자의 경우, 무엇보다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 풍기는 '마음의 향기'라고 정의 하고 싶다. 겸손과 겸양을 알고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하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인향을 골고루 갖췄다고 생각한다.
인향을 논하노라니 며칠 전 일이 떠오른다. 감기로 2주 넘게 심하게 앓아서인지 보리밥과 청국장이 먹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맛 집을 검색해보니 자동차로 40여 분 달려서 찾을 수 있는 어느 시골 근처의 보리밥 집 후기가 눈에 띄었다.
음식 맛도 있지만 그 식당 주인 할머니 인심이 참으로 넉넉하다는 글 때문이다. 지금 가을철이라 일찍 땅거미가 찾아온다. 어둠을 뚫고 어렵사리 그곳을 찾아가보니 외진 시골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이었다.
그곳을 들어서는 순간, 구수한 보리밥과 청국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8순은 족히 돼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필자 앞으로 다가온다. 그리곤 손에 들린 노릇노릇 구워진 누룽지와 호박 한 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할머니의 느닷없는 행동에 의아해 할 즈음 할머니는, " 이 호박은 직접 농사 지은거니 반찬 해 먹어요. 그리고 누룽지는 이따 댁에 가면서 차 안에서 드세요" 라고 한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자 갑자기 따순 할머니 마음 씀씀이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호박은 단 한 개라도 식재료로 쓰면 된다. 누룽지 또한 숭늉으로 끓여도 된다. 그렇지만 그 할머니는 음식도 시키기 전에 손님상에 자신의 것을 덥석 내놓았다. 그날 보리밥과 청국장도 너무 맛있었다. 모처럼 어린 날 친정어머니가 음식 해주던 손맛을 그 할머니 식당에서 맛볼 수 있었다.
음식 맛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소소한 것이지만 오랜만에 그 할머니로부터 온정과 사람다운 인향을 맡아볼 수 있었다. 이렇듯 사람이 풍기는 온기는 마음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이음줄이 되어주고도 남음 있었다.
그 이후 다시 지인들과 그 음식점을 찾았다. 그러나 할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며느리라는 젊은 베트남 여인이 홀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다. 며느리인 여인에게 할머니 안부를 묻자 며칠 전부터 독감으로 병원에 입원중이란다. 음식 값을 지불할 때 할머니께 과일이라도 사다드리라고 별도로 2 만 원을 며느리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서툰 한국어로,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여인을 뒤로 하고 식당 문을 나서자 인자한 할머니를 뵙지 못해서인지 왠지 마음이 허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