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회에서 행한 202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단순한 재정 계획 발표를 넘어 국가의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고 올바른 방향 설정을 제시했다고 본다. 연설 전반에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아프고도 근본적인 과제인 ‘불평등, 자산 격차, 그리고 K자형 성장’에 대한 깊은 성찰과 국정 책임자로서의 고뇌가 담겨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거시적 지표만 놓고 보면 유례없는 대도약을 이루고 있다. 40년 만의 잠재성장률 연속 반등, 수출 1조 달러 가시권 진입, 그리고 인구 5천만 명 이상 대국 중 1인당 국민총소득(GNI) 4만 달러를 달성하는 이른바 '5040 클럽' 진입 가시화까지, 숫자상의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경제 강국이다. 그러나 화려한 거시지표의 그늘 아래, 일선 자영업자와 청년, 저소득층이 체감하는 민생 현장의 삶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의 최근 통계치는 현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불평등의 골이 얼마나 깊어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산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순자산 지니계수는 역대 최고 수준인 0.625까지 치솟았고, 상위 20%와 하위 20% 가구 간 순자산 격차(5분위 배율) 역시 44.9배로 해마다 그 폭을 넓히고 있다. 땀 흘려 일하는 근로소득이 연 2.4% 늘어나는 동안, 자산이 벌어들이는 재산소득은 9.8% 급증했다. 노동이 자산을 따라잡지 못하고 소수에게만 성장의 과실이 집중되는 'K자형 양극화'는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결함이자 사회적 통합을 가로막는 최대 방해물이다.
 
최근 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에서 거센 사회적 불만과 대규모 시위가 끊이지 않는 현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경제 규모가 큰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두터운 복지와 민생 안전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회적 갈등이 언제든 폭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다. 반면,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탄탄히 구축된 북유럽 국가들이 대규모 소요 없이 상대적으로 견고한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모습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통해 불평등 극복과 민생 안정을 국가 최고 과제로 띄운 것은 담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이다. 승자독식과 소수 대기업 중심의 전통적 성장 공식에서 벗어나, 청년과 저소득층, 그리고 소외된 지방이 함께 일어서는 ‘모두를 위한 성장’으로 국정 철학을 전환하겠다는 의지는 매우 타당하다.
 
하지만 정치권의 무수한 말과 화려한 수식어는 쉽게 허공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국정 철학의 진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는 바로 ‘돈의 흐름’, 즉 예산안이다. 그런 면에서 정부가 총 820조 9000억 원 규모로 편성한 2027년도 예산안은 국정 방향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입증하고 있다.
 
예산안에 반영된 정책 구조를 보면, 우선 청년 세대의 자산 형성과 주거 안정을 위해 청년 예산을 전년 대비 53.5%나 대폭 증액한 43조 3000억 원으로 편성하고 청년 공적임대주택 10만 6000호를 공급하기로 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복지 지원 방식을 복잡한 '신청주의'에서 국가가 먼저 찾아주는 '자동 지원' 방식으로 대전환하고, 기준 중위소득을 역대 최대인 6.7% 인상해 유럽 복지국가에 비견되는 민생 안전망의 기틀을 다진 점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만, 이러한 복지 확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양극화의 근본적 해결과 '기본사회' 실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 시리즈 정책을 비롯한 보편적 권리로서의 기본권 보장 대책이 한층 더 강력하게 추진되고 강조될 필요가 있다. 단편적 시혜를 넘어 기본소득으로 연결되는 촘촘한 소득 안전망이 구축될 때 비로소 든든한 기본사회의 기틀이 확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막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지방 우대’를 재정 배분의 최우선 원칙으로 내세운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방 주도 성장 예산을 전년 대비 2배가 넘는 33조 원으로 늘리고, 수도권 공공기관 300여 곳의 2차 지방 이전과 중앙행정기관 44곳의 세종 이전, 수도권과 멀어질수록 정부 지원을 두텁게 하는 61개 지방우대 사업, 지방 국립대 30곳의 등록금 전액 지원 등 굵직한 균형발전 자금을 실효성 있게 배치한 점도 유독 눈에 띈다.
 
예산은 선언이 아닌 실천이며, 국정 철학의 가장 정직한 얼굴이다. 이번 11월 2일 시정연설과 2027년도 예산안은 국가 재정이 단순한 경제 덩치 키우기를 넘어, 자본주의의 구조적 결함인 양극화와 불평등을 치유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되고 있음을 보여주어 큰 기대를 갖게 한다.
'소수의 성과'에서 '모두의 삶'으로, '특정 지역'에서 '전국 골고루'로 국정의 중심축을 옮기겠다는 이 약속이 국회의 철저한 심의와 신속한 집행 과정을 거쳐, 국민 개개인의 삶 속에 손에 잡히는 변화와 결실로 열매 맺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