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전 예금 사전인출 사태, 이른바 'VIP 고객 특혜인출'은 금융당국의 '영업정지를 신청하라'는 요구가 발단이 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는 '공무상비밀누설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대신 영업정지 신청 요구를 받은 뒤 부당인출을 주도한 김양(58) 부회장 등 3명을 추가기소하기로 했다.
정관계 고위층의 특혜인출 의혹, 영업정지 후 예금인출 및 전산조작 의혹, 금융감독원 파견 감독관의 직무유기 의혹도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게 이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의 설명이다.
21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김홍일)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그룹 관계자들이 특혜인출이 발생한 부산저축은행 등의 '영업정지 정보'를 입수한 시점은 2월15일 오후 8시30분이다.
금융위원회(금융위) 관계자가 박연호(61) 그룹 회장, 김민영(65) 부산저축은행 대표, 강모(59) 감사에게 '영업정지를 신청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지기 이틀 전의 일이다.
하루 뒤인 16일 부산저축은행 대주주 및 경영진은 금융위의 요구을 수용할 것인지 논의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김 부회장도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게 됐다.
이에 김 부회장은 이날 오후 5시께 부산저축은행 안모(58) 전무이사에게 영업정지 예정 사실을 알렸고, 안 이사가 주요 고객들에게 이를 누설하면서 대규모 사전인출 사태가 벌어졌다.
대전저축은행의 경우에는 2월15일 오후 5시께 파견감독관이 김태오(60) 대표에게 '그룹에 영업정지를 신청하라고 요구할 예정'이라고 귀띔하하면서 영업정지 예정 사실이 유출됐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부산·대전저축은행에서 영업정지 직전(2월16일 영업시간과 마감시간 이후) 부당하게 인출된 예금은 총 1060건, 144억344만7727원에 달한다.
하지만 검찰은 김 부회장과 안 이사, 김 대표만 업무방해 및 업무상배임 혐의로 기소하고, 영업정지 신청을 요구하거나 이 사실을 귀띔한 파견감독관에게는 죄를 묻지 않기로 했다.
우병우 대검 수사기획관은 "비록 간접적으로 영업정지 예정사실을 알려주는 효과가 발생했지만, 행정절차 이행의 반사적 효과일 뿐 고의가 있다고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관계 고위층의 특혜인출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했지만,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정창수 전 차관 등도 만기가 도래해 예금을 찾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한 "영업정지 이후에도 예금이 인출됐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으며 금융감독원 파견감독관의 직무유기 의혹도 인출을 제지한 사실이 확인돼 죄를 묻기 어렵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은 부당인출된 144억여원 중 85억여원은, 파산법상 부인권(파산자가 파산선고를 받기 전 채권자를 해치는 행위를 한 경우 그 행위의 효력을 상실케 하는 권리)을 행사해 환수키로 했다.
검찰은 임직원이 영업정지 정보를 알려줘 예금을 인출했거나, 영업정지 정보를 들은 직원이 본인 또는 지인 명의 예금을 빼낸 사례에 해당하는 이 돈은 부인권 행사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수사과정에서 저축은행이 '쪼개기 예금'을 조장·관리해온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예금보험공사에 자료를 이첩, 실예금주 기준에게만 5000만원 한도에서만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다만 판례상 불리한 부분이 있는 만큼 예금자보호법을 개정, '쪼개기 예금주'는 실계좌주 기준으로 합산해 5000만원 한도 내에서만 보장하는 취지의 규정을 신설하도록 금융위에 통보할 계획이다.
대법원은 예금보험공사가 분산예치된 예금명의자의 보험금 지급청구를 거절할 수 있는 경우를, 금융기관과 실예금주가 명의자의 반환청구권을 배제키로 합의한 사실이 명확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