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로금리 유지' 정책이 국내 물가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저금리 정책으로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신흥국으로 흘러들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폭우로 인한 채소류 가격 상승, 전세값 급등, 공공요금 인상 등 국내 요인들은 하반기 물가상승의 '복병'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당초 목표로 제시한 연평균 4.0%의 소비자물가 달성에도 잔뜩 먹구름이 끼었다.
◇美 양적완화…신흥국 인플레 우려 높아져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지난 9일(현지시간) 연방기금 목표금리를 2013년 중반까지 현 수준으로 동결시키겠다고 밝힌 뒤, 국내 물가 불안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물가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은 기획재정부의 고민이 깊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12일 "미국의 저금리 기조가 달러 유동성을 늘려 국내 물가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로 들어온 외화가 시중유동성을 팽창시켜 서비스 요금과 자산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금도 소비자물가는 7개월 연속 4%대를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인플레에 대한 우려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발표된 중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6.5% 상승했다. 37개월 만에 최고치다.
중국의 인플레는 근본적으로 넘치는 유동성에서 비롯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4조 위안에 달하는 자금을 시장에 풀자 걷잡을 수 없이 가격 상승을 일으킨 것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저금리정책으로 또 다시 유동성이 국내에 유입될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해 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3차 양적완화 카드를 꺼낸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미국은 두 차례 양적완화를 통해 2조3000억 달러를 쏟아 부은 상태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신흥국의 인플레가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때문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중국 등 신흥국가들은 미국의 자금이 신흥국으로 흘러들어 물가가 상승했다며 FRB 등의 정책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간 공조 이전에 또 다시 환율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은, 금리동결…'물가' 우선순위서 밀려
환율상승 등 금융불안도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12일 10영업일간 28원 올랐다. 이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향후 생산자·소비자물가에 전가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당초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됐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번 달 기준금리를 3.25%로 동결하면서 속도 조절에 나섰다. 국제 금융시장 불안 등 해외 위험요인으로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장기적으로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했지만, 금리인상 시기를 놓쳐 물가불안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 역시 '물가안정 중심'의 정책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경기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물가에만 매달리기는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정책의 중심이 어느덧 '물가'에서 '성장'으로 옮겨간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추석물가' 들썩…물가인상 요인 '수두룩'
정부는 우선 서민들이 체감하기 쉬운 전세값, 채소값 등의 상승을 더 우려하는 분위기다. 올해는 이른 추석까지 겹쳐 '추석물가'에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최근 한 부동산 업체의 조사 결과, 전세값은 지난 8개월간 매달 233만7500만원 꼴로 나타났다. 7월 채소값도 평년대비 많은 양의 강우가 집중되면서 전월에 비해 35% 폭등했다.
여기에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까지 더해질 경우 연평균 소비자물가가 4.0%를 넘어설 것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물가를 연평균 4.0% 이내로 유지하려면 8월부터 향후 5개월간 평균 3.7%를 넘지 않아야 하는데,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유가 등 국재 원자재 가격 상승이 물가 불안을 잠재울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하지만, 정부는 물가상승 압력을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라는 입장이다.
최근 재정부 등 관계부처는 우선 급한 대로 중국 배추 500톤을 수입하고 통신비도 추가 인하하기로 했다. 농협을 통해 제수용품을 판매하는 등 추석 대책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