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였다"
예산사업 증액을 요구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예산실을 찾은 한 정부부처 공무원의 푸념이다. 그의 표정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18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1동 4층에 위치한 재정부 예산실은 각 부처 재정(예산)담당자들로 북적였다. 9월말 국회 예산안 제출을 앞두고 부처별 예산심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을지훈련 기간(8월 16~19일)이 겹쳐 방문객은 평소보다 많이 줄어든 편이다.
심사를 받기 위해 온 사람들은 대기실에 삼삼오오 모여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예산실 앞에서 길게 목을 빼고 자신의 순번을 기다린다.
하나같이 굳은 표정이다. 본래 부처 예산담당자에게 재정부 예산실은 결코 달갑지 않은 곳이다. 예산편성의 키를 쥐고 있는 재정부 예산실의 말 한마디에 몇 십억 원 하는 사업예산이 반 토막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부처 예산담당자들은 올해가 다른 해보다 더 '팍팍하다'고 입을 모은다. 돈을 풀어야 할 재정부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부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균형재정 시기를 1년 앞당겨 2013년까지 달성하라고 지시한 뒤 세입과 세출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불필요한 지출은 더 줄이고 세입은 늘리겠다는 의미다.
더욱이 올해는 취득세 50% 감면 조치로 인한 지방세수 감소분을 중앙정부가 모두 보전키로 했다. 지난 5월까지 집계된 세수 부족분만 5000억원에 달해 올 한 해 2조1000억원의 세수 보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에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각종 복지예산 요구가 줄을 잇고 있어 재정당국의 고민이 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부처에서는 '증액'사업 요구에 더욱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산 담당자는 "신규 사업에 대한 증액안을 가져가면 (예산실에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삭감안을 가져가면 더 삭감하려 든다"면서 "오늘 왜 왔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다른 부처 관계자도 "부처별 실링(예산총액한도)이 있어 자체적으로 이미 예산을 많이 깎은 상황인데도 (재정부가) 1,2차 심의에서 다시 대폭 깎았다"면서 "신규 예산은 아예 반영해주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당정이 최근 일자리와 맞춤형 복지 예산을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복지부 예산담당 관계자는 "이제 1차 심의가 끝났다"면서 "(복지 예산이 확대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차피 정해진 세입 안에서 분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급격한 재정긴축이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정부는 세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법인세 소득세 감세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세수를 확보할 곳도 마땅치 않다.
하지만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긴축과 균형재정은 다르다"며 "전 세계적으로 재정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나라 곳간을 튼튼히 하는 게 왜 잘못됐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