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 꺽일 것으로 기대됐던 9월 소비자물가가 또 다시 4%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가 상승을 주도하던 채소류 등 신선식품 가격이 33개월 만에 하락했지만, 공업제품·서비스 가격의 오름세가 지속되면서 이를 상쇄했다. 소비자물가는 8월 5.3%와 비교하면 크게 둔화됐으나 예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벌써 9개월 연속 4%대 이상의 '고공행진'이다. 올 들어 9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5%, 정부의 물가목표치 4%를 훌쩍 넘어선 상황이다. ◇고춧가루·금반지 물가상승 주도=4일 통계청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3% 상승했다. 이는 전달보다 1.0%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4개월 만의 최저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로 올 1월 4.1%, 2월 4.5%, 3월 4.7%, 4월 4.2%, 5월 4.1%, 6월 4.4%, 7월 4.7% 등으로 7개월 연속 4%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간 데 이어 8월에는 5.3%로 치솟았다. 9월 물가는 채소류에 웃고, 고춧가루와 금반지에 울었다. 채소류는 8월 전년 동월 대비 21.6% 급등하며 물가 상승을 견인했지만 9월에는 9.6% 급락하며 물가 안정을 주도했다. 채소류 혼자 끌어내린 물가 상승률이 0.87%포인트에 달한다. 하지만 고춧가루와 금반지, 두 품목의 가격 상승이 채소류 가격 하락의 효과를 상대적으로 제한했다. 고춧가루 가격은 전월 대비 38.2%, 전년 동월 대비 92.6% 증가했고, 금반지 가격은 전월 대비 8.1%, 전년 동월대비 36.2% 올랐다. 특히 금반지의 경우 전체 소비자물가지수(1000)에서 차지하는 가중치가 4.8로 미미한 수준임에도 물가상승 기여도는 0.45%포인트에 달했다. 최근 무섭게 상승하고 있는 집세(0.42%포인트) 보다도 더 높은 수치다. 양동희 통계청 경제통계국 물가동향과장은 "글로벌 재정위기의 영향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지며 금반지 가격이 2005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며 "금반지의 기여도만 제거하면 9월 물가 상승률은 4.3%에서 3.8%로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목 놓아 기다리던 '3%대 물가'를 금반지가 날려버린 셈이다. ◇환율·집세 등 4분기도 '지뢰밭'=9월을 포함한 올 1~3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5%. 정부의 물가목표치 4%는 달성이 불가능해졌다. 올해 물가 상승률을 4%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4분기 평균 물가 상승률을 2.5%로 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저효과 등을 이유로 4분기 물가가 빠르게 안정될 것으로 내다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물가가 4.1% 급등했던 만큼 올해는 상대적으로 '상승율'이 제한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채소류의 지속적인 가격하락과 KT(10월)와 LG 유플러스(11월)의 이동전화요금 인하도 정부의 '장미빛 전망'의 근거다. 하지만 민간 전문가들은 연간 물가 목표가 아니라 4분기 평균 물가 상승률을 4% 수준으로 억제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채소류 등 신선식품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하방 경직성이 더 큰 공업제품과 서비스 가격의 상승세는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가격변동성이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9월에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3.9% 올랐다. 비록 8월(4.0%)보다 소폭 둔화됐지만 여전히 2009년 6월(3.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우리 경제의 장기적이고 추세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특히 4분기에는 국제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불안 등은 돌발 악재가 산재하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환율이 10% 뛸 때마다 물가상승률은 0.8%포인트 높아진다. 실제로 환율에 영향을 많이 받는 석유 제품은 9월에 휘발유가 전년 동월 대비 14.6%, 경우가 16.4%, 등유가 23.9% 급등했다.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로 국제유가 상승세가 주춤해졌지만 급등한 환율 때문에 가격 상승폭이 커진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 상승은 10월 물가지표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라며 "환율이 가장 큰 물가 '복병' 중 하나"라고 말했다.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는 전월세 가격 등 집세도 물가 안정에 복병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전세와 월세 가격은 지난해 대비 각각 5.4%와 3.1% 상승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수년간 미뤘던 공공요금 인상을 재개할 것이라는 점도 변수다. 이미 서울시 등 수도권은 이번 달부터 시내버스와 지하철 요금을 각각 200원씩 인상할 방침이다. 물가 부담 완화를 위해 정부의 협조요청을 받아 공공요금 인상 시기를 미뤘던 지방자치단체들이 9월 물가 상승세가 주춤해짐에 따라 각종 공공요금을 인상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최근 4년간 계속 서비스업 물가는 공업제품보다 계속 낮았다"며 "정책적으로 상승률을 눌렀던 만큼 올해 하반기부터 서비스업이 (물가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실장도 "4분기에도 환율 때문에 물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평균 4%대를 기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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